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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비핵화의 촉진제

기사승인 2017.05.29  19: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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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IFES) ‘현안 진단’ - 남북관계는 북미대화와 비핵화의 촉진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관련하여 『현안진단』을 연속 4차례 시리즈로 발행•배포합니다. 지난 호의 ‘남북관계 복원·정상화’, ‘사드와 한미/한중관계'에 이어 이번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에 관해 살펴봤으며, 다음으로 ‘개성공단 재개’를 다룰 예정입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10여일 만에 북한은 두 차례나 신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만약 실제로 북한이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어떠한 행동을 보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때가 되면 우리와 중국이 말린다고 미국이 인내와 자제력을 보일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려했던 군사적 옵션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7일 취임 후 처음으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급격하게 고도화되고 현실화됐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는 한반도의 안보불안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문제의 해결은 당면한 안보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도전과제이다.

김정은 시기 북한은 ‘핵무력경제병진노선’을 내세워 안보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제재국면에서 이는 불가능하다. 북한은 ‘핵포기의 딜레마’와 ‘핵보유의 딜레마’라는 뫼비우스 사슬에 빠져 있다. 북한 스스로 핵무력이 미국과의 협상 수단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결국 생존을 위해 사슬을 풀 수 있는 것은 미국뿐이라는 점에서 미국과의 협상은 필연적이다.

트럼프 신 행정부의 등장은 북한에게 미국과 협상을 재개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핵미사일 개발에 더욱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신 행정부에게 북핵미사일 문제가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라는 점을 인식시켜 협상테이블로 나오도록 다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조급함이 느껴진다. 설령 게임을 앞당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협상카드를 늘리고 몸값을 올리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미국과 협상 전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확실한 카드로 만들려고 할 것이고, 미국은 북한이 ICBM 카드를 가지고 나오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더 이상의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차단하기 위해 핵항모와 전략폭격기를 보내 군사행동을 시사하며 협박도 하고 중국을 통해 압력을 행사해 보고 있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북미간 대화 가능성을 알리는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홍석현 대미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어떤 조건이 된다면 관여(대화)를 통해서 평화를 만들어 나갈 의향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어떤 조건’을 북한의 핵포기 약속으로 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고도화하지 않고 개발을 중단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조건이다. 유엔주재 미국대사 역시 “북한이 핵·미사일 관련 실험을 전면 중단한다면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했다.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라는 입구를 통해 비핵화의 긴 터널로 들어가 핵폐기라는 출구로 나아가려는 ‘유예 입구론’이 부상하고 있다.

완전한 북핵 폐기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바뀔 수 없다. 그러나 비핵화는 과정이지 선후관계가 아니다. 전략적 인내가 가져다 준 실패의 교훈처럼 기다릴수록 북한의 핵미사일은 점점 더 고도화되고 북핵문제 해결은 점점 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는 북한이 더 이상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하지 못하도록 추가적인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핵미사일 시험 유예’ 역시 북한이 내놓을 중요한 협상 칩이라면, 최소한 유예라는 ‘어떤 조건’이 성립되어야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역시 전략적 인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대화의 조건을 기다리는 사이 북한 핵미사일은 더욱 고도화될 수밖에 없다. 결국 당장에라도 대화 자체는 시작하는 것이 지금처럼 대화의 조건으로 기 싸움을 하는 것보다 ‘유예’라는 입구로 들어서기에 더 용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유예를 통해 미래의 핵개발과 고도화를 동결시킬 수 있다. 그런 다음 현재의 핵능력을 폐쇄, 봉인, 검증하여 되돌릴 수 없도록 불능화한 후 과거 만들어 놓은 핵무기까지 완전히 폐기하여야 한다. 그러나 어떠한 보상 없이 북핵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으로서도 단계별로 북한에 무엇을 제공하여 비핵화의 길로 유인할 것인지 고민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에 대해 물질적 보상보다 제재해제를 우선 요구해 올 가능성이 높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구분해 살라미전술로 나올 수도 있다. 만약 ICBM 발사까지 성공한다면 카드를 더 세분화하여 요구할 수도 있다. 유예와 제재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유예’라는 입구를 통해 비핵화를 위한 본격적인 대화국면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이 생각하는 초기 조건이 다를 수 있어 이를 얼마나 잘 조율할 것인지가 국면전환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우선 대화를 열어 유예와 함께 제재의 연성화를 위한 논의는 시작하되 실질적인 제재해제는 IAEA 사찰단의 복귀 및 활동과 맞추어 단계적으로 진행해 나갈 수 있다.

아직까지 미국이 대화로 중심을 이동했다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지금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하기 힘겨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전히 트럼프 행정부에는 북한문제보다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유예를 시작점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높은 수준의 북한 제재해제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분명 적지 않은 간극이 있다. 그 공간이야말로 우리의 역할로 채워나갈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 한국이 미국에게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대화를 조속히 시작할 것을 자신 있게 이야기해야 한다. 동시에 하루빨리 남북관계를 복원하여 핵문제와 직결되는 분야가 아닌 한 제재국면 하에서도 가능한 대북지원 및 남북교류의 물꼬를 터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제재수위를 조정하는 명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해 북미대화의 압박과 중국에 적극적인 협력 요구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트럼프 정부보다 다섯 달 늦은 셈이다. 북한문제에 있어 시작은 다섯 발자국 늦었지만 한 발자국 앞서나갈 수 있는 기회이다. 지금 나아가지 못하면 배제될 수도 있다.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에 대한 우려를 떨치고 향후 ‘6자 회담을 통한 비핵화’든 ‘4자 포럼을 통한 평화체제’든 우리의 목소리가 당당히 반영되어야 하고 남북관계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한국과 남북관계는 북미대화와 비핵화에 촉진제이지 장애물이 아니다. 한미동맹과 남북관계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공조를 적극 활용한다면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차단하면서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에 앉힐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라는 특수한 관계를 이용해 인도적 지원 및 교류 복원을 통해 제재해제의 명분을 제공하면서 남북관계가 한발 앞서나가는 기회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단계적(유예-동결-불능화-비핵화), 다원적(6자 비핵화-4자 평화포럼-남북/북미 양자), 포괄적(안보-경제)인 정교한 한국형 로드맵의 작성이 시급한 이유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김동엽 donykim@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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