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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 목사 인터뷰② “북한 붕괴 남한 하기에 달려”

기사승인 2016.12.08  10: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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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통일연대 초대 이사장 선임된 박종화 목사 인터뷰②

인터뷰를 위해 사무실을 찾았을 때 박 목사는 먼저 지인에게서 선물받았다는 북한의 월간 잡지 <조선>을 보여줬다. 9월호였다. 거기엔 북한교회의 ‘예배’ 장면이 2페이지에 걸쳐 화보와 함께 실려 있었다.

인터뷰에서는 자연스럽게 북한교회 얘기가 나왔다. 남한의 보수교회 일각에서는 북한교회를 가짜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박 목사는 “통일되기 전까지는 북한교회는 가짜든 진짜든 우리의 협상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통일되기 전까지는 국가를 대표하는 정권이 있는 한 싫든 좋든 그 정권이 대화의 상대라는 이유에서다. 박 목사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다면서 “가치 평가는 나중에 하는 것”이라며 “적어도 통일이 될 때까지는 (북한교회의 진짜가짜 논쟁은) 부질한 논쟁이다. 의미없는 얘기다”라고 했다.

이밖에도 박 목사는 동서독 통일 사례를 통한 북한의 변화 방향과 방법, 북한의 점진적 변화의 필요성, 남북 통일이 서울과 평양으로 대표되는 2연방이 아니라 다양한 지자체 교류를 통한 ‘다연방 사회’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피력했다.

박 목사를 지난 1일 만나 평화통일연대의 향후 계획, 그리고 구상 중인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구상,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정권의 퇴진에 대한 입장 등에 대해 들어봤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 목사는 통일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소상하게 밝혔다.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박 목사의 개인 사무실에서 있었다. 인터뷰가 다소 길어 ①평통연대의 계획 ②한반도 통일 구상 ③현 정국에 대한 입장 등 세 차례에 나눠서 싣는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주

 

-독일사회는 어떤가?

독일이 우리 사회와 맞는가 안맞는가 하는 논쟁은 제쳐두고 어짜피 (통일과 관련해서는) 벤치마킹을 안할 수가 없다. 반면교사로서의 텍스트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서 내가 10년을 살았다. 분단 시절에 살았고 분단 이후에 가봤다. 분단 이전에 독일교회 목회를 했다. 독일교회 목회를 하다보니까 독일 현장에 들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사회 내 한인사회, 한인교회 상황은 잘 모른다. 그러나 독일 상황은 잘 안다. 동독 상황도 잘 알고, 독일 사람들과 일을 많이 해봤다.

그런데 그때 알던 것과 통일된 이후에 동독 가서 만나보면 다르다. 다시 가서 보고 통일 이전과 이후의 차이, 그것은 사고의 차이가 아니라 재건 과정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사회를 만들었는지, 만들 때 가치는 어떠 했는지, 이런 걸 비교해보는 게 중요하다. 제도가 어떠한가 하는 것은 정치가 할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은 기본가치관을 공감하는 데 있어서 어떤 게 어려웠고 시간은 얼마나 걸렸는지에 대한 것이다. 아마 남북한은 이 작업이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그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북한에 세워진 교회는 교파 교회가 아니고 연합 교회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한에 세워진 교회는 교파가 중심이 돼서 사람 열심히 모아서 건물 세우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이미 북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복지제도에다가 내용을 충실히 채워주는 것이어야 한다. 복지시설, 탁아시설, 의료시설, 종교시설 이 모든 것이 한 동네에서 한 세트가 되어서 지적 복지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다만 내용이 부실할 뿐이다. 이걸 살려서 내용(콘텐츠)을 주고, 북한 나름대로 복지를 만들어가야 북한이 제대로 간다. 남한식 자본주의는 북한에 안맞다. 북한식 사회주의는 기독교 가치관과 자유주의 가치관으로 바꾸고, 다만 사회주의 틀은 그대로 둔 채 내용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틀은 북한식, 내용은 남한식의 북한 개발인 건가?

자유나 인권, 정의 등 보편적 가치관을 가지고 기존의 북한 틀에 맞추는 것이다. 다 부수고 새로 짓지 말고 가능하면 북한의 틀은 그대로 가져가자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북한의 만족도가 어떻고 남한의 만족도가 어떤지를 연구하는 것이 내가 지금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다. 북한과의 대화가 그런 것 아닌가. 우리가 북한과 소통한다고 했을 때 북한의 것을 부순다면 그건 소통이 아니다. 그 생활체제(정치체제가 아닌)와 소통을 해야 하는데 사회생활, 의식생활, 문화생활 등에 대한 전반적인 틀과 소통하면서 우리가 북한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 걸맞는 체제를 하되 그냥 현상이 아니고 발전된 현상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남과 북은 차이가 있다. 단, 어느 쪽이 더 행복한가는 묻지 말자. 질적·양적 차이가 다 있을 수 있다. 이 두 개를 다양성을 두고 발전시켜야 한다. 동일화하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하려면 북한도 그걸 이해해야 하고, 남한도 이해해야 한다. 서로 안맞으면 못한다. 북한에 해야 할 것은 시장경제가 아닌 공동체다. 이원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두 체제가 아니라 다양한 체제일 수도 있다. 이것은 남북이 서로 공감해야 한다. 그것을 독일에서 보고 장단점을 배우겠다는 것이다. 독일이 처음엔 잘했지만 그게 잘 안되어서 수월하지 못했다. 그걸 우리는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평화통일연대 초대 이사장 박종화 목사 ⓒ유코리아뉴스 범영수 기자

-얘기를 쭉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박종화 목사님’에 익숙했는데, 이젠 ‘박종화 박사님’이 어울리시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독일에서 받은 박사학위 주제는?

(웃음) 교회 일치다. 세계적인 교회 일치, 한국 문제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교회 일치 원론과 현실 문제가 들어가 있다. 현실은 한국 문제를 다뤘고, 일치 문제는 WCC(세계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세계교회 일치의 신학을 담았다.

 

-아까 북한 잡지 내용 중에 ‘예배’ 관련 된 걸 보여주셨는데, 평통연대의 역할 중 하나로 ‘북한 교회 세우기’를 언급하셨다. 보수 일각에서는 ‘북한 교회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데 통일 과정에서 남북 교회간 연합 등 남북 교회의 역할은 뭘까?

북한 교회가 진짜냐 가짜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걸 확대하면 북한 정권이 진짜냐 가짜냐 논란이 된다. 통일되기 전까지는 국가를 대표하는 정권이 있는 한 싫든 좋든 그 정권이 대화의 상대이다. 통일되기 전까지는 북한교회는 가짜든 진짜든 그게 우리의 협상 파트너인 것이다. 가치 평가는 나중에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해야지 ‘가짜니까 안하겠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북한의) 당 하고 협상해야 한다. 물론 교회도 당의 지류지만 당이 파트너로 나와서 ‘대화하자’고 하면 대화를 할 수가 없다. 남한 정부와 북한 정부가 싫든 좋든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니까 당국 대화도 그렇게 하는 거고, 민간 차원의 교회간 대화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걸 일종의 ‘전략적 지혜’라고 볼 수 있다. 자격 여부 문제는 내적인 문제지 외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 정도는 남한 교회가 보수든 진보든 마음에 담아야 된다.

정부간 대화에서 군사 문제나 정치 문제는 서로 다르다. 남한 교회와 북한 교회는 그것보다 훨씬 덜 다르다. 가짜든 진짜든 말이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신앙을 전제로 하기에 이미 공통이 있는 것이다. 정부는 통일도 안되어 있고 국가이기 때문에 공통이 있을 수가 없다. 반면 민간 차원에서는 공통된 게 굉장히 많다. 기독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역사, 스포츠, 예술 이건 굉장히 공통된 게 많다. 적대감보다 공통이 훨씬 많다. 당국은 다른 게 많다. 가짜-진짜로 보면 안된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예술이 진짜 예술이냐?’라고 할 때 북한에 그런 것이 있다고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지 연구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놓고 볼 때 진짜가짜 논쟁은 적어도 통일이 될 때까지는 부질한 논쟁이다. 의미없는 얘기다.

 

-진짜 가짜 따지지 말고 일단 만남부터 하자?

당국도 민간도 그렇고, 대화하면서 비로소 서로간에 진면목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진실이 많이 드러난다. 그 진실이 변화시키는 것이지 요구가 변화시키는 게 아니다. 진실이 변화시킨다. 북한 교회는 내가 볼 때는 겉으로는 당의 지시를 받지만 속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만 믿지만 국가도 존중한다. 반면 북한은 국가 예속이다. 우리는 예속은 없지만 우리도 국가를 존중하고 따르는 면이 있다. 신앙 자체가 국가에 대한 반대만은 아니다. 살면서 항상 체제와 기독교는 반대만 있는 게 아니다. 신앙과 체제가 항상 반대하는 것만은 아니다. 북한에서는 신앙이 체제를 반대하면 숙청당한다. 하지만 남한은 다르다. 유신 때도 나는 체제를 반대했지만 체제를 찬성하는 교회도 있었다. 남한도 다른데 북한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건 내가 속한 체제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 말은 현실을 인정한다는 것이지 가치까지 인정한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별 문제가 없다.

한 예로, 독일 통일 전에 서독에서 동독 교회를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동독 교회만 아니라 러시아정교회, 폴란드 교회 등 공산주의 체제의 교회가 진짜 교회냐 논란이 많았다. 합의된 것은 동유럽 전체를 사회주의체제라고 가정하고, 거기에 있는 교회는 사회주의라는 체제 속에 몸담고 있는 교회이지, 사회주의를 대변하는 교회도 아니고, 사회주의에 저항하는 교회도 아니고, 사회주의에 속한 교회도 아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현실 속에 몸담는, 사회적 구성체를 사회주의 속에 몸담고 있지만 어느 이념에도 속하지 않는 미션 공동체를 고수하는 교회라는 것이다. 북한의 교회가 북한 주체사상 체제하에 있는 교회임은 분명하다. 남한 교회와는 많이 다르다. 그렇지만 바라기는 북한 체제를 선전하거나 주석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공동체라는 것이다. 소위 사회성은 그 체제에 규정되어 있으나 정체성은 체제를 초월하는 하나님 신앙에 두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북한교회를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 속에 몸담고 있는 교회, 그렇게 나는 규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북한 체제가 신은 아니다. 신은 따로 있다. 남한이 그걸 알고 그렇게 인정하고 북한 교회를 상대해야 한다. 북한에서 볼 때는 남한 교회는 철저하게 자본주의 체제 교회다. 자본주의는 옳고 사회주의는 나쁜가? 이건 또 신학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러니까 남한의 교회도 남한 자유민주주의라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 있으나 자본주의의 대변자가 아닌 것과 같은 논리다.

 

-그렇다면 남한 교회와 북한 교회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되는 건가?

서로 존중하고 갈등하고 하다가 결국 어느 교회가 세우는 가치관이 보다 진실하고 보다 행복을 추구하고 하나님 신앙에 가까운가 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남북 교회가 지적인 가치관 경쟁 시대에 돌입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북한의 요덕수용소를 비판한다고 할 때 그렇다면 대한민국에는 인권유린이 없는가. 우리도 인권유린이 있다. 우리도 티가 있는데 상대방에 들보가 있다고 한다면 되겠나. 남북 교회가 모든 문제에 있어서 서로 비판할 수 있지만 가치 경쟁의 체제로 가야 한다. 그 경쟁이 없이는 대화가 안된다. 난 북한교회 사람들 만나서 이런 얘기들 많이 주고받았다. ‘우리가 너희보다 신앙이 진실하기 때문에 우리 인민이 잘 산다’ ‘어떻게 하면 잘 사나?’ ‘진실로 신앙을 가지면 잘 산다.’

 

-그런 얘기를 주고받을 때 북한교회 사람들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다.

나는 그런 얘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못한다. 자기들은 속으로 ‘그래 맞아’라고 할 것이다. 나는 신앙은 체제와 이념의 도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걸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북쪽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그런가?’ 하겠지만 그걸 외연화시키지는 못한다. 우리는 외연화시킬 수 있다. 나는 바깥에 나가서도 우리 체제에 대해 북한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비판한다. 그것도 아주 담대하게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런 말 했다가는 숙청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묻는다. ‘너희는 어떻게 해서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냐? 그렇게 해도 괜찮냐?’ 그러면 내가 그런다. ‘그게 바로 자유다.’ 북한 사람들이 그걸 굉장히 부러워한다. 그렇게 해야 자기 책임도 생기고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복지는 같이 가는 것이다. 그 얘기는 북한 사람들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나한테 계속 물어본다. 그게 바로 가치관의 차이라는 것이다. 가치관의 경쟁이라는 것이다. 그 경쟁을 말로 하지 말고, 삶으로 하면 서로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런 만남을 통한 자연스런 변화의 사례가 있나?

1987년 즈음 북쪽 사람들을 호주에서 처음 만났다. 회의를 하는데 내가 밥 산다고 신용카드를 냈다. 그때 얼마나 오해를 받았는지 모른다. 나를 쁘락치라고 하는 것이다.

 

-신용카드 쓴 걸 가지고 쁘락치라고까지 한 이유는?

신용카드라는 게 북한 사람들은 보지도 못한 것이고, 당시 남한에서도 민간인 중에 이 카드를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됐겠나. 그런데 버젓이 민간인이 쓰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당 정도는 되어야 쓸 수 있는 건데, 물론 당에서도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나는 졸지에 목사라는 이름하에, 교수라는 이름하에 남조선의 쁘락치로 오해받은 것이다.

 

-그 오해를 어떻게 이해시켰나?

그 다음 회의에서 만났더니 다시 묻더라. 그래서 내가 설명해줬다. 남한에서는 잘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런 카드를 많이 쓴다고. 이걸 이해시키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나 보고 ‘네가 그렇게 정부를 비판해도 그 카드를 받을 수 있나?’라고 하길래 ‘카드와 비판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걸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체제에 순응해야 뭔가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비록 반체제여도 애국은 별도다, 이런 얘기를 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남한 사람이 북한 사람 만나서 자신의 사회 문제를 얘기하면서 유신체제 반대니 대통령이 나쁘다느니 얘기하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수령체제를 나쁘다고 할 수 있나?’하고 의심했지만 ‘우린 다 한다’고 했다.

 

-그때가 노태우 정부 땐데 체제 비판이 남한에서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북한은 혼자가 아니고 늘 2명 이상이 나온다. 아무리 많이 나와도 대표자 한 사람만 얘기한다. 우리는 10명이 가면 10명 얘기가 다 다르다. 그러니까 북한 사람이 ‘열 명 얘기가 다 다른데 누구 말이 진짜냐?’라고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귀찮게 사냐?’고 하는데 ‘그게 바로 자유다’라고 답해준다.

또, 북한 사람이 ‘그렇게 해도 괜찮냐?’고 묻는데 ‘아니, 그렇게 해야 올바른 사회다’라고 해준다. 그걸 보고 북한 사람이 ‘남한은 자기 체제를 막 욕해’라고 비난하는데, ‘이게 바로 정치 교육이다’라고 말해준다. 정치 교육이라는 게 외국 가서 자기 체제를 칭찬만 하는 게 아니다. 그러면 듣는 외국 사람들도 다 욕한다. 그게 아니라 자유스럽게 욕(비판)하고 거기에 애국도 있으면 된다. 북한? 북한은 여기에 감히 따라올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 전제를 하고 국내 정체 문제 얘기를 하면 북한 사람들이 많이 배운다. 내가 북한 사람들한테 들은 얘기가 있다. 1987년인데 그때 을지로 신세계 앞에서 데모를 많이 했다. 북한에서도 그걸 방영했는데 방영하자마자 화면을 바꿨다. 왜냐 하면 신세계 뒤에 전경들이 쫙 깔려 있었고 그 위로 화려한 신세계백화점이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이 그걸 보고 ‘저렇게 잘 사는데 왜 데모야?’라고 하는 거다. 데모는 안 보고 배경만 봤던 것이다. 그러자 북한TV에서는 건물은 안보여주고 사람들 얼굴만 부각시켰다.

 

-그렇다면 요즘 엄청난 규모의 ‘박근혜 퇴진’ 시위대를 보며 북한도 충격받을 거라고 보나?

그렇다. 지금 촛불 데모, 이것은 북한에 엄청난 충격이다. 우리가 말하는 자유성은 비판적이면서도 연대하는 것 아닌가. 이런 자유스런 삶이 북한한테 해가 되는 게 아니고 오히려 그것이 좋은 경험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솔직하게 잘못을 고백하고 고치고, 대통령이 안고치면 욕하지 않나. 북한은 그걸 못한다. 그래서 북한과의 만남이 자주 있는 게 좋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건 가치관의 싸움이라는 거다. 우리는 자꾸만 숨기려고 하는데 사회주의 체제가 숨기는 거지 자유체제에서는 숨기면 안된다. 숨기지 않는 게 도리어 힘이다.

또 말하고 싶은 것은 교회간의 만남이 있어야 하는데 교회만이 아니라 문화도, 스포츠도 만나야 한다. 사람들이 만나면 전혀 달라진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이런 걸 이해하고 스스로 따라오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통일된 이후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변화하려고 해도 그때는 주눅 들어서 못한다. 상당히 오랫동안 못한다. 그런 시각을 가지고 남한 식으로 하는 거는 맞지 않고, 또 북한에 세워질 교회가 꼭 남한 스타일 교회일 필요도 없다. 하나님만 믿으면 되는 거지, 스타일은 자주적인 복종이면 되는 거지 굳이 교파 교회일 필요는 없다. 하나의 교회여야 한다.

또한 ‘교회 따로 복지 따로’가 아니라 복지라는 틀에서 교회가 있어야 하니까 교회 따로 짓지 말고 복지센터를 교회가 만들어주고 교회는 그 복지센터 안에 있으면 좋겠다. 기초의료센터, 탁아센터, 모임센터 등 복지지향의 선교가 내 꿈이다.

 

-그런 내용이 지금 연구 속에 다 들어가 있는 건가?

다 들어 있다. 지금 북한은 사회주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모양만, 사회주의 이론만 있고 실체가 없는 거다. 실체는 우리가 채우는 것이다. 우리가 채우면 사회주의 껍데기 자체도 바뀐다. 사회는 화석이 아닌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돈이 들 든다. 또한 북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도 쉽다. 이게 다 공동체적 사고인데 지금은 이념으로 묶인 공동체지만 앞으로는 신앙으로 탈바꿈해서 수령 자리에 하나님 모셔 놓고, 선한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 우리는 바텀업(bottom-up)하는 공동체인데 북한은 그게 불가능하다. 우리가 선한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북한의 선교를 구조화할 때 남한의 개신교보다는 천주교가 훨씬 빠를 것으로 본다. 천주교는 하향체제다. 개신교는 각자도생이다. 북한은 천주교 식이지 개신교 식이 아니다. 그래서 북한은 잘못하면 천주교화 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개신교 하려면 북한의 현재 사회적 공동체 자체를 망가뜨리지 말고 거기다 신념 채우고 자원 채우고 소프트웨어 채우면 그게 기독교적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수령론을 하나님론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북한 사회에 가치를 심어야 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가치를 바꾸는 것이다. 틀을 바꾸는 게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틀 바꾸는 걸로 족하다고 한다. 나는 거꾸로다. 틀은 삶의 도구이므로 그 도구는 천천히 바꾸고 지금은 가치를 새롭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생기는 거다.

 

-북한에 대해 붕괴할 거라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북한이 어떻게 될 거라고 보나?

나도 잘 모르겠지만 북한이 순식간에 붕괴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 말(북한붕괴론)에는 구체적 조건이 없다. 동유럽이 붕괴할 때는 소련 연맹이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그 물결에 따라 해체된 것이지, 북한은 그 자체로 존속하기에 세계사적 변화가 아무리 있어도 북한은 독자적으로 생존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란 나라가 속히 붕괴할 거라는 것은 남쪽의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일 뿐이다. 난 그렇지(붕괴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북한이 망하고 안 망하고 별 차이가 없는 게 북한 체제가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가치관의 변화, 경제의 변화, 사회 변화가 우리가 직접 가서 변화시키면 주종 관계, 갑을 관계가 되어서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1993년 당시 정계 은퇴한 김대중 전 총재를 모시고 독일에 갔을 때 독일 사람들이 우리 보고 하는 말이 ‘동독을 서독화 했더니 힘들었다. 동독의 인재, 동독의 틀은 그대로 둔 채 그쪽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테크노크라트로 해서 서독에서 아이디어를 주고 같이 했어야 하는데 싹 쓸어버리고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남쪽 사고는 ‘북쪽이 빨리 망하면 좋겠다’고 하는데, 마치 상대편을 청소하는 걸로 생각한다. 사람은 청소가 안된다. 서서히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도 서서히 문을 열면서 자기 식대로 통치하면서 경제도 서서히 바꾸는 게 남한한테도 좋고 북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돈도 훨씬 적게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앞으로 통일되면 4차 산업이 남한의 주류를 이룰 것이다. 2, 3차 산업은 한국을 일으킨 원동력이긴 한데 이미 남한 사회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이게 북한에 가서 경쟁력을 살려내야 한다. 현재 2, 3차 산업이 북한에 가면 꽃을 피울 수 있다. 북한은 4차 산업을 아직 못받는다. 하지만 2, 3차는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서로 오가면서 완충역할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진적 발전은 남한에 훨씬 좋다. 북한에 좋은 게 아니다. 남한 경제에 좋다. 남한 기업에 좋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조속한 붕괴를 기다리면 안된다. 나중에 통일이 되더라도 각자 자율적 사회로 가야 한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만 된다. 그러려면 북한 체제가 사자가 아니라 연성체처럼 이빨이 없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을 줘야 한다. 우리가 통치하는 게 아니라 북한을 통해서 통치하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건 변화 과정에서 동구사회주의처럼 붕괴되는 것 아닌가?

그건 남한 하기에 달려 있다. 근건 북한의 결정이 아니고 남한의 결정에 달렸다. 우리가 ‘핵만 아니라면 5년은 지원할 수 있다’라고 하고 ‘우리가 도와줄 테니 도망가지 말고 협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라고 하면 된다. 박근혜 정부는 아무것도 못한 것 아닌가. 그렇게 해야 북한이 자주성을 지키면서 나름대로 서게 되는 것이지, 다 청소하게 되면 물고기 잡는 법은 안알려주고 물고기만 잡아주는 격인데, 5,000만이 2,700만을 절대 먹여살릴 수 없다. 지금 노인시대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5000만이 다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도 지금 심각한데 2,700만까지 떠맡으라고 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얘기다. 북한에도 나름대로 임금 주고 나름대로 행복을 줘야지 남한과의 기계적 평준화는 불가능하다. 그건 안된다고 생각한다. 평준화가 행복이 아니다.

북한이 조속한 시일 내에 붕괴하면 통일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북한이 점진적으로 변해서 결국 바라기는 소프트랜딩을 할 수 있으면 제일 좋다. 전쟁은 절대 안된다. 평화적으로 통일하겠다는 것은 결국 소프트랜딩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북한을 소화할 수 있을까. ‘소화한다’는 말이 내적 갈등이란 뜻이니까 소화가 아니라 사회의 내적 열전인 셈이다. 그 열전을 우리가 어떻게 할지에 대해 평화통일연대가 교회를 위해서만이라도 자료를 제공하면 좋겠다. 이런 과정이 통일과정의 내실화라고 생각한다. 이걸 하나도 생각 안하고 그냥 거죽으로만 통일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 남한에서 통일을 바라면서도 북한식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보나 보수 똑같다. 그러면서 북한을 위해 내 것을 퍼줘서 북한을 평준화시키겠다는 사람도 별로 없다. 솔직하자. 진실하자. 지금 우리는 북한이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투자해서 서서히 단계적으로 밟아 올라가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결국 북한을 점진적으로 변화하도록 기다려주는 게 북한도 살 뿐만 아니라 남한도 사는 비결이란 뜻인가?

우리가 북한에 투자해야 남한도 살듯이 북한도 거기 순응해야 남북이 같이 살 수 있다. 남북은 어짜피 두 사회다. 남한도 지금은 서울과 지방이 다른 격차 사회이듯이 북한은 우리보다 더 심하다. ‘평양공화국’과 여타 지역의 격차가 우리보다 더 세다. 그건 우리와 똑같다. 그건 서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우린 마치 북한은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북한은 하나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가 아니듯이 말이다. 이미 남북은 통일되는 순간부터 다원화한 사회가 된다. 이미 지금도 다원화되어 있는데 더 다원화되는 것이다. 다만 철로로 고속도로로 연결하면 인프라를 통해서 연결은 될 것이다. 다만 다원성이 지배하는 사회다. 그걸 무시하면 북한은 어렵다. 그래서 평양 재건과 함경북도 재건, 양강도 재건은 각각 달라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미 지역도 특성 살려서 개발해줘야 한다. 그래서 투자도 국가적 단위에서 하고, 인프라 만들 때는 정부 차원에서 하고 지방 투자는 지자체끼리 교류해서 해야 한다. 교회도 지방의 교회끼리 교류하면 좋겠다. 나중에 북한에 세워질 교회가 지역별 연합교회가 될 수 있다. 꿈이 아니다. 가능하다.

 

-남북 지자체간의 교류라?

예를 들어, 서울은 평양, 부산은 청진을 맺으면 된다. 각 지방별로 다양한 교류 내용을 추진하고 서로 경쟁하듯이 할 수 있다. 물론 국방이나 안보, 외교, 경제개발은 중앙정부가 맡되 나머지 문제는 지방에 넘겨줬으면 좋겠다. 이건 빠르냐 안빠르냐가 전혀 문제가 안된다. 다양성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도 이제는 그걸 염두에 둬야 한다. 지역별 연대를. 그러면 교파와 상관없이 큰다. 서울은 워낙 커서 연대성이 없지만 지방은 연대성이 아주 크다. 나는 그런 것을 연구하는 중에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예를 들어 경상남도와 양강도가 자매결연을 했을 경우, 그건 이념의 차원도 아니고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도 아니고 ‘우리 둘이 합해서 잘 살아보자’의 결연이다. 참 재미있을 것 같다.

중요한 건 북한 사회가 발전하려면 공동체 모델인데 한 동네가 복지공동체가 되어 자립하는 구조여야 한다. 틀만 주고, 동네에 따라 복지 우선, 학교 우선 등 우선순위는 다르게 갈 수 있다. 이런 것들을 잘 조정해서 전 국토가 다원화된 발전상을 제시해주면 좋겠다. 어짜피 수도 이전도 했는데 너무 고비용이라고 비판하지 말고 이미 된 것, 통일 되어서도 비슷할 텐데 다원화된 지방 수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세종시 문제를 다원화의 한 걸음으로 생각하고 북한도 그렇게 했을 때 저비용 고효율의 지방화가 가능할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 도 단위로 협력할 수 있는 데는 아마 교회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가능하다. 교회가 할 일이 엄청 많다. 진보-보수 교회가 모여서 한다면 북한의 교회가 더 좋아질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게 내 꿈이다.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해 서울-평양 교류를 추진했었다. 정치와 상관없이 민간차원, 지자체 교류는 가능하도록 하자는 얘기는 끝없이 제기됐었다.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

가능하다. 그것밖에는 없다.(계속)

 

*박종화 목사는 누구?

박종화 목사는 한신대 신학과를 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거쳐 독일 튀빙겐대학교 대학원 신학 박사를 받았다. 독일에서 현지인 목회도 했었다. 이후 1985년부터 10여년간 한신대 신학과 교수, 1994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1998년엔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에 선임됐다. 1999년 12월 경동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해 16년 만인 2015년 12월 은퇴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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