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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해법: 제재를 넘어 협상을 시작할 때

기사승인 2016.06.02  10: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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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 논쟁 제51호

제재는 효과가 있을까?
제재를 강화하면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에 대한 역대 최강의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한국은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사업인 개성공단을 양자 제재 차원에서 중단했다. 북한 선박에 대한 국제사회의 감시망이 작동하고 금융부문에 대한 제재도 강화되고, 전략물자의 북한 유입은 훨씬 어려워졌다. 그러나 제재의 그물망은 완벽하지 않다. 북한의 외화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해외 노동력 수출은 여전히 가능하고, 북한의 광물 수출도 민생목적을 예외로 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대북 제재의 효과가 중국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90%가 넘었다. 통계로 드러나는 북중 무역은 양국의 무역과 중국을 경유하는 3국의 무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중국 경유는 단순히 북한의 농수산물이 중국산으로 둔갑하여 3국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또는 옷이나 신발 혹은 단순 전자제품의 일부 공정을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중국산(Made in China)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소비재나 기계류 등도 결국 중국을 거쳐서 북한으로 들어간다.

중국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 전략물자에 대한 통제는 강화하겠지만, 정상적인 무역은 허용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딜레마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을 원하지 않는다. 한미 양국은 중국의 협력을 기대하면서도 중국이 협력하기 어려운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을 추진한다. ‘대북 제재의 국제정치학’은 모순적이고 그래서 효율적이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동북아 분업구조다. 북한은 동북아 지역에서 저임금의 비교우위를 가진다. 한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중국의 동북지역은 중앙정부의 지원으로 고속성장을 했지만, 2013년부터 한계에 직면했다.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인구가 빠져나가고 임금이 상승했다. 단둥, 훈춘, 허룽 등 중국의 접경도시들은 경쟁적으로 북한의 노동력을 유입하고 있다. 모든 남북경제협력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의 북중 위탁가공(Processing Business) 사업이 증가하고 있다. 중국 동북지역은 ‘분업의 경제학’에 따라 당연히 ‘제재의 정치학’에 소극적이다.

제재와 핵개발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제재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기에 당연히 북한에 대한 압력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북한은 제재의 효율성과 관계없이 제재의 의도를 주목한다. 제재의 목적이 북한체제에 대한 붕괴라고 해석하기 때문에, 붕괴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우라늄 농축방식으로 핵물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고, 중장거리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탄두의 소형화·경량화도 진전시키고, 운반수단의 성능개선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이나 이동발사 미사일 등 다양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북한의 핵능력이 강화되었는데, 과연 과거의 방식인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져볼 수 있다. 강화된 핵능력만큼 협상도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제재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지금까지 제재와 핵개발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악순환의 상승작용을 해왔다. 당장 해결하기 어려워도 악순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현재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제재만큼의 협상이다. 협상이 없는 제재 일변도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제재는 그야말로 목적 자체가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제재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6자회담의 시작을 위하여
6자회담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6자회담 무용론을 제기한다. 6자회담이 중단된 지 벌써 9년째고, 그 동안 북한의 핵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북한을 포함해서 참여국들의 회담 참여 의지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6자’라는 다자적 접근을 대체할 마땅한 형식이 없고, 2005년 9.19 공동선언은 여전히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기본합의로 유효하다. 새로운 합의를 추진하는 것보다 ‘기존합의’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우선적으로 장기간의 ‘협상의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이 협상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주장도 국제사회가 원하는 수준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고,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데려올 수 있다면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 협상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동시에 서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협상을 해야 상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협상은 과정이다. 제재와 압박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핵 폐기’라는 결과를 강조한다. 그러나 협상은 일방적인 폭력이 아니기 때문에 합의를 위한 과정이 있고 이행도 과정이 필요하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것이 협상의 출발이다. 6자회담이 시작되면 우선적으로 초기이행조치를 합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불신이 깊기 때문에 초기이행조치는 핵실험 중단이나 핵물질 생산중단과 같은 구체적인 조치를 포함해야 한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참여국들도 개성공단 재개나 일부 제재조치의 완화 등 상응조치를 취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달라진 상황을 반영해서 9.19 공동선언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9.19 공동선언에는 결정적으로 운반수단 문제, 즉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하는 장거리 로켓이나 위성개발에 대한 조항이 없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1999년 북한과 미국의 쿠알라룸푸르 미사일 회담의 합의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협정 논의의 중요성
6자회담의 시작을 위해서도 그리고 구체적인 합의를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다. 평화협정은 포괄적인 평화체제의 구성요소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2월 23일 왕이-케리 회담에서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을 합의했다. 새로운 합의가 아니라, 2005년 9.19 공동선언의 핵심 합의를 재확인한 것이다.

비핵화가 이루어져야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지만, 그것은 9.19 공동선언의 합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선후’가 아니라 ‘병행’이 기존합의다. 북한 핵 문제는 근본적으로 한반도 냉전체제의 산물이다. 냉전극복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핵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북한과의 관계가 변해야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새로운 관계’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한반도 평화체제’다. 1996년 남북한과 미중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을 합의하고 몇 차례 회담을 열었던 경험이 있다. 9.19 공동선언에서도 ‘4자회담’을 재확인했다.

현재 한반도는 협상의 부재가 가져온 재앙을 겪고 있다. 물론 협상이 열린다고 해서 문제가 쉽게 풀릴 것으로 보지 않는다. 협상은 쉽지도 않고 오래갈 것이며 과거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때때로 중단될 수 있다. 핵심은 협상의 과정을 관계의 변화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관계의 근본적 변화, 즉 한반도 평화체제, 그 중 평화협정에 대한 합의 수준이 북핵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김연철은 1996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북한의 산업화와 공장관리의 정치(1953~70)’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1997~2002),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2004~2005) 등을 역임했고 2010년부터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냉전의 추억』(2009),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2001) 등 다수가 있다.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김연철 dootakim@inje.ac.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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