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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보는 미국 : 불편하지만 오래된 진실

기사승인 2015.11.11  14: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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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38호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외교의 세계
북한의 미국관은 국제정치적 상황과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바뀌어 왔다. 냉전시대의 미국관과 탈냉전 시대의 미국관이 다르다. 남북의 국력 차이도 북한의 미국관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과 미국에는 북한이 아직도 미국을 적으로만 여기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북한의 미국관은 80년대 말 90년대 초 탈냉전과 함께 크게 변화되었다.

냉전시대 북한의 미국관: ‘철천지 원쑤’(sworn enemy)
한국전쟁은 북한이 ‘전 한반도의 공산화’를 위해 기습적으로 남침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북한의 예상과 달리 미군이 즉각 참전함으로써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넘게 지속된 전쟁에서 북한은 결국 전쟁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북한의 목적을 좌절시켰기 때문에, 휴전 후 미국은 북한에게 ‘철천지 원쑤’가 되었다. 때문에 한국전쟁 후 북한은 철저한 반미 입장에서 외교를 하였다. 시기적으로도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하였다.

미국이 ‘철천지 원쑤’가 된 원인은 또 있다. 참전 후 미군은 우세한 공군력으로 북한의 주요 전략거점을 폭격한 바 있다. 평양은 초토화되었다. 북한은 이걸 근거로 ‘반미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완수라는 구호를 내걸고 김일성 유일영도체제를 확립하였다. “미 제국주의와 남조선 괴뢰도당의 압제 밑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남조선 동포들을 해방시킬 때까지는 북조선을 남조선 해방과 혁명의 기지로 건설해야 한다”는 논리로 북한주민들의 체제순응과 경제난 감내를 유도했다. 국제정치를 국내정치에 활용한 것이다. 이렇게 북한은 미국에 ‘철천지 원쑤’라는 빨간 딱지를 붙여 놓고 50~80년대 대내외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해 왔다.

탈냉전 후 북한의 미국관: 바람막이(windbreak)
1989년 12월 3일, 부시 미 대통령과 고르바쵸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지중해의 섬 몰타에서 냉전 종식을 선언하였다. 몰타선언으로 2차대전 종전 이후 두 진영으로 나뉘어 냉전적 이념외교를 해왔던 국가들의 국제관계가 요동치게 되었다. 경제난에 봉착한 소련은 동유럽에 대한 간섭과 지원을 끊었고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몰타선언 이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1989.11.9)된 독일은 드디어 1990년 10월에 통일을 선언하게 되었다.

이즈음에 북한의 대남정책과 미국관이 크게 바뀌었다. 1989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김일성은 “앞으로 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는 식으로 돼서는 안 됩니다.”라고 강조하였다. 1991년 신년사에서 또 그런 말을 반복하였다. 북한이 체제전환과 흡수통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북한은 1990년 9월부터 시작된 남북총리급회담에서 남한으로부터 체제안전을 보장 받으려고 노력한 바 있다. 그 결실이 1991년 12월 13일 서명된 ‘남북기본합의서’이다.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기 위해 협상을 하는 와중인, 1991년 7월, 북한은 남한보다 먼저 유엔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동안 북한은 남한의 유엔 동시가입 제안을 ‘분단고착화’ 정책이라며 반대했었다. 그러나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전환이 일어나고 독일통일이 이뤄지자 국제사회에서 투-코리아를 기정사실화하는 정책으로 선회한 것이다.

유엔가입으로 투-코리아를 국제법적으로 기정사실화시켜 놓고 남한으로부터 체제안전 보장각서(기본합의서)도 받은 뒤 북한은 미국에게 획기적인 제안을 했다. 1992년 1월 22일 북한의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가 뉴욕에서 아놀드 캔터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나 “미국이 북한과 수교해 주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통일 후에도 미군이 위상과 역할을 바꿔서 한반도에 남아 있는 걸 용인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첨부했다. 미국은 북한의 이러한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북한이 핵개발을 시작하였다. 흡수통일을 막고 미국으로부터 대등한 자격으로 대접 받기 위해서는 협상력을 키워 줄 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김정일 위원장에 따르면, “통독 후 내가 주석님을 설득해서 핵 개발을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김일성은 “미국이 북한을 인정하고 경제지원도 해주고 군사적으로 압박하지 않으면 비핵화를 하라”고 김정일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냉전시대에 ‘철천지 원쑤’라며 주한미군 철수를 일관되게 주장하던 북한이 왜 미군의 남한 주둔을 인정하면서까지 미·북 수교를 요구했던가? 한마디로 미국이 흡수통일을 막아주는 안전판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계산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미국관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한 것은, 미군의 남한주둔을 인정하고서라도 미국과 수교만 하면 남북기본합의서 상에 합의된 체제안전보장 조항보다 훨씬 강력한 체제안전 장치가 생긴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동북아에서 손을 뗄 수 없는 미국외교의 기조를 역이용해서 북한체제의 안전을 보장받으려 한 것이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석상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1992년 1월의 대미 제안 내용을 재확인했다. 당시 상황을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필자에게 직접 전해준 바 있다. “냉전이 끝나고 난 뒤 미국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미군은 동아시아에서 국제질서의 안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미군이 남쪽에 주둔하는 상황에서도 북과 남이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2000년 10월 25일 평양에 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에게도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 하면서 “미북수교만 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던 것이다.

북한은 아직도 미국에게 바람막이 역할을 기대할까?
90년대 초부터 미국을 흡수통일을 막아줄 바람막이로 본 북한은 2000년까지는 그런 입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 입장일까?

북한이 핵포기를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받아내려고 하는 것은 미북수교와 경제지원, 그리고 한반도 평화협정이다. 미북수교를 하려면 법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수교와 평화협정은 사실상 동의어다. 6개국이 합의한 9.19 공동성명(2005.9.19)에 북한이 서명한 것은 자기네들의 목표가 거기에 다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바로 김일성의 유훈이기도 하였다.

문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생각이다. 북한은 세습체제이고 할아버지, 아버지의 방침은 유훈이며, 유훈은 신성불가침이라는 점에서 김정은도 이러한 미국관과 핵정책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5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미국이 평화협정에 관심을 보인다면 미국과 대화하겠다”고 한 것은 핵을 미·북 수교 및 평화협정과 교환하자는 9.19 공동성명 이후의 기본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2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흡수통일을 피하고 안정적인 체제유지를 보장하기 위한 바람막이로 미국을 활용하려는 북한의 미국관은 불편하지만 오래된 진실로서 오늘까지도 변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 더구나 남한에서 북한붕괴를 전제로 한 통일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 북한의 이 같은 대미관과 전략은 변화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북한의 오래된 대미관에 깔려 있는 변하지 않은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은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중국문제 연구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통일부에 들어간 뒤 북한 연구, 대북정책 개발, 남북대화로 28년을 보내는 동안 남북대화 운영부장, 대통령 통일비서관, 통일부 차관・장관을 역임했다. 2004년 정부에서 물러난 뒤에도 통일・외교・안보 관련 강연, 칼럼 기고, 언론 인터뷰 등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본 게시물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정세현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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