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조문은 김씨 왕조를 견재할 잠재 민주세력의 싹을 자르는 일"
김정일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일, 30여개 탈북단체들이 모임을 갖고 '독재자 김정일 추모 반대를 위한 탈북단체들의 비상대책회의'(한창권 대표회장)를 결성했다. 이들은 21일 김현욱 민주평동 수석부의장과 오찬을 한 뒤 곧바로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 발표가 끝난 오후 4시경 약 10만부의 대북 전단지가 담긴 풍선을 북쪽을 향해 날려 보냈다. 이에 앞서 오전 11시 30분에 미리 10만부의 대북 전단지를 띄워보내기도 했다.
▲ 21일 탈북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행사는 성명서 발표, 탈북자 단체장들의 자유발언, 북한민주화를 위한 구호제창, 전단살포 순으로 진행됐다. ⓒ유코리아뉴스 |
“북한의 민주화 더 늦어진다”
김일성 사망에 대한 조의 표명 ‘반대’
독재 정권의 세습지지 ‘반대’
비상대책회의가 가장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김정일에 대한 추모 반대다. 이유는 김정일에 대한 조의 표명은 북한의 민주화만 더 늦출 뿐이라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독재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이미 북한에 전했다. 여기에 일본과 한국에서 독재자 김정일 사망에 조의를 표한다는 개탄스러운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는 북한주민들에게는 '독재자에게 굴복하여 숨죽이고 살아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은 김씨 왕조를 견재할 수 있는 잠재적인 민주세력의 태동을 좌절시키는 일이다."
이들은 나아가 조문단 파견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한에 조문단을 파견하거나 조문추파를 던지는 정당과 단체들에 대해 2만5천여 탈북자들이 총집결하여 끝까지 투쟁하여 조문망동을 분쇄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또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서 지금이라도 양심 있는 언론과 정계의 인사들이 나서서 북한 정권을 견제해야 한다”고 밝히고 “우리는 북한인민들의 편이다, 북한이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세습독재를 반대한다, 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성명서를 발표중인 북한인민해방전선 장세율 사령관. ⓒ유코리아뉴스 |
“반세기만의 기회, 놓칠 수 없다”
김정일 참배 모습은 ‘가짜’
대북지원 끊어, 김정은 체제의 희망 끊어야
이들은 또 북한에서 계속 방송하고 있는 김정일 사망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참배는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북한 주민들은) 속으로는 수십 년간 거듭되던 김일성왕가의 장기독재가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북한에서 거주하면서 김일성 사망을 경험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도 제시했다. 대북지원 중단이다. 이를 통해 정권 연장의 희망을 끊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으로는 어떠한 형태의 대북지원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 주민들이 희망을 품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비상대책회의 한창권 대표회장은 “UN이나 대북인권단체의 구호품은 지속적으로 보내야 할 것"이라며 모든 대북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금의 한반도 정세를 '하늘이 준 기회'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 땅에서 종북역적들을 청산하고 조국통일의 날을 앞당기려는 우리 탈북자단체들의 강력한 투쟁은 이미 시작되었다”며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 전단살포 풍선, 총 20만부의 전단지가 북쪽 하늘로 향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
다소 격양된 분위기에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서 30여 탈북단체장들은 김정일의 죽음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쳤다. ‘도살자 김정일의 비참한 죽음을 환영한다’ ‘김정일의 급사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다. 도살자에 대한 역사의 심판을 환영한다’. 아울러 전단지가 담긴 대형 비닐 풍선에다가는 '지옥에 떨어진 김정일' '3대세습 끝장내자' '악마에게 조문가냐' 등의 큼직한 글씨를 파랑, 빨강, 초록색으로 적어넣기도 했다.
비상대책회의는 김정일 사망에 따른 북한의 변화를 민첩하게 감지해 향후 북한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공동대처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이범진 기자(poemgene@ukoreanews.com)
"지금이야 말로 하나님 주신 한반도평화의 기회" 임진각 대북전단 살포현장에서 만난 노정선 연세대 명예교수 21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 광장엔 100여명의 탈북단체 대표들과 회원들이 대북전단 삐라를 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많은 기자들이 이들을 취재하느라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이 자리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한 노 교수가 어깨너머로 탈북단체들의 주장을 귀기울여 듣고 있었다. 노정선 연세대 명예교수다. 노 명예교수는 영국 BBC 방송 등에 분단이나 통일과 관련해 분석해주고 브리핑해주는 일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날은 그냥 조용히 탈북단체들의 주장을 듣고만 있었다. 통일이나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진보노선을 일관되게 걸어온 그가 탈북단체들의 주장을 어떻게 들었을지 궁금했다. 궂고 쌀쌀한 날씨에도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눈에 띄는 것은 탈북단체들이나 노 명예교수나 일관되게 ‘지금은 위기가 아닌 기회’라고 본다는 점이다. 탈북단체들은 북한 체제변화의 기회로, 노 명예교수는 남북화해의 기회로 각각 여기고 있었다. 다음은 노 명예교수와의 일문일답.
난 탈북자 단체들과도 깊이 얘기한다. 우리 가족이나 친척 중에 북한에서 내려온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세미나 같은 데서 만나서 얘기해보면 서로 통하는 게 많다. 탈북단체들은 북한에서 인민 봉기가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되면 북한 주민 중 최소 10만명은 희생된다고 봐야 한다. 나도 20번쯤 북한에 다녀왔지만 북한에도 시위가 있다. 20~30명이 경찰서에 몰려가 항의하는 걸 직접 보기도 했다. 그런 것 쯤은 허용되고 있는 게 북한 사회다. 난 북한에 갈 때마다 북한이 고쳐야 할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봉수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도 교인들이 가슴에 김일성 뱃지를 달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는 김일성 뱃지를 떼고 드려야 한다’고 했더니 몇년 후엔 정말 김일성 뱃지를 떼고 예배를 드리더라. 북한도 대화와 설득을 하면 얼마든지 통할 수 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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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