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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속으로] 5·24조치

기사승인 2014.10.14  10: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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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긴 겨울잠에 들어간 듯하다. 남북 당국간 대화나 교류의 말들은 많았다. 하지만 행동은 따르지 못했다. 만나지 않으니 오해가 쌓이고 오해가 쌓이니 말은 또 다른 오해를 낳고 마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올 1월 김정은 위원장의 ‘상호 비장 중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이 있을 때만 해도 적어도 남한 사회에는 통일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었다. 하지만 지난 3월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선언’을 북한이 공식 거절하고, 이어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통일 분위기는 쏴 가라앉았다. 남북 관계의 시금석인 물동량도 지난해에 비해 급감하고 있다. 거기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예고, 한일 공조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대중(對中) 전략이 강화되면서 한반도에는 어느 때보다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남북관계, 나아가 한반도는 바야흐로 시계제로 상황을 맞고 있다. 남북간 교류나 대화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좀처럼 풀기 어려운 매듭이 드리워진 셈이다. 이를 위해 박근혜 정부가 먼저 대북관계의 유화제스처로 5.24조치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북한의 책임있는 자세 변화가 없는 만큼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5·24조치는 어떻게 내려졌고, 그 효과는 무엇이고, 그렇다면 5·24조치에 대한 올바른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짚어봤다.

천안함과 5·24조치
2010년 5월 24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 로비. 비장한 얼굴의 이 대통령이 대국민특별담화를 읽어 내려갔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를 절감하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민 여러분, 천안함은 북한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습니다. 또 북한이었습니다.”

‘또 북한이었다’는 이 말 속엔 6·25를 비롯해 1983년 10월 아웅산 묘역 테러사건, 1987년 11월 KAL 858기 폭파사건, 그리고 2010년 3월에 있었던 천안함 침몰사건이 모두 북한 소행이었다는 걸 염두에 둔 것이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 두 달여 만의 대통령 대국민특별담화에는 대북 강경책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단호하게 조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 선박의 우리 해상교통로 이용 불가, 남북간 교역 중단 등을 천명했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고귀한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 상황에서 더 이상의 교류·협력은 무의미한 일”이라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평화’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군사적 대결이 아니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라고 말했다. 국민의 안보의식에 대해서도 “북한의 어떠한 위협과 도발, 그리고 끊임없는 분열 획책에도 우리는 결코 흔들려선 안된다”며 “국가 안보 앞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의 특별담화 직후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 등 장관들도 정부종합청사에서 ‘천안함 군사도발 사태 관계부처 장관 합동기자회견’을 열고 군사, 외교, 남북관계를 총망라한 초강경 대북조치를 발표했다. ▲우리 국민의 방북 불허 ▲남북교역 중단 ▲신규투자 및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의 투자 확대 금지 ▲대북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북한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전면 불허 등 이른바 5·24조치다.

기자들과 일문일답에서 ‘5·24조치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란 질문에 외교부장관은 “북한의 반응, 우리가 요구하는 것에 대한 인정 및 사과, 재발방지에 대한 확실한 조치가 있을 때까지 이러한 조치는 계속해 나간다”고 밝혔다.

천안함이 북한 소행일 것이라는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가 계속되자 북한도 입장을 내놨다. “천안함 사건의 북한 관련설은 날조된 것”(2010. 4. 17 조선중앙통신), “검열단 파견, 공동조사” 제안(2010. 5. 20 북한 국방위), “연어급·130t 잠수정 없다”(2010. 5. 28 북한 국방위원회 내외신 기자회견) 등 천안함 사건은 자신들과 무관한 남한 정부의 조작, 날조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는 대북 경제제재조치 성격이 짙다. 조치 내용은 북한에게 심각한 경제적인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그렇게 설명했고 언론들도 그렇게 전망했다. 5·24조치로 북한은 당장 현금 수입만 3억 달러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2008년 북한 재정규모인 34억 7000만 달러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천안함 사건 한 해 전인 2009년 남북교역 규모(개성공단 제외)는 7억 4000만 달러로 북한 대외무역 50억 9000만 달러의 14.5%를 차지했다. 5·24조치로 인한 남북교역 중단이 북한에 미칠 영향은 커보였다. 반면 남북교역이 남한에 미칠 영향은 미미해 보였다. 남한 전체 대외무역 규모 6866억 달러의 0.1%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남한은 북한산 물품을 2억 4519만 달러어치 수입했고, 그 대가로 2억 1087만 달러의 현금(보험료, 운송료 제외)을 북한에 전달했다. 여기에다가 북한은 남한으로부터 원자재를 받아 이를 완제품으로 만든 뒤 남한으로 보내는 위탁가공업으로 3175만 달러를 받았다. 5·24조치로 북한 선박이 우리 해역 대신 먼 공해로 돌아갈 경우 추가로 부담해야 할 기름값만도 연간 100만 달러에 달했다. 그뿐만 아니다. 5·24조치로 북한은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보내는 대북지원물품도 받을 수 없게 됐다. 2009년 한 해 대북지원 규모는 6890만 달러(837억 원)였다. 이 조치로 북한 경제 전반의 숨통을 조일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었다. 경제를 주축으로 ‘2012년 강성대국 원년’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에게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을 것이었다.

5·24조치의 그림자
5·24조치 시행 4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어떨까. 지난 6월 12일 6.15 남북정상회담 14주년 기념학술회의에 참석한 리온 시거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국장은 “2011년 북한의 세계무역은 55억 5300만 유로로 2007년보다 26.7%가 늘었다. 유럽과의 교역은 1억 5900만 유로로 2007년보다 3분의 1이 늘었다. 인도로부터의 수입(주로 원유)도 2010년에 10억 달러였는데 이는 2000년대 중반에 비해 10배 가량 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5·24조치로 북한의 자세 변화를 기대했던 우리 정부로서는 ‘배드 뉴스’인 셈이다.
미국은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한반도 비핵화 ▲북미관계정상화 ▲6개국 경제협력과 대북 에너지 지원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의 원칙 등 내용) 직후 북한의 돈세탁 혐의로 마카오의 방코델타은행(BDA) 북한계좌를 동결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금융제재 및 경제제재가 본격화된 것이다. 이때부터 북한은 무역 및 금융 활로를 다각도로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시거 국장은 “북한 무역의 경우 2005년 금융제재 이후 상당히 늘었다. 중국과의 무역뿐만 아니라 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과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2011년엔 사상 첫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표 참조).

   
▲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2013)

2000여 남북경협기업들의 모임인 남북경협비상대책위원회, 남북물류포럼,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등은 “애초 정부의 목표와는 달리 5·24조치로 인한 북한의 타격과 손실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며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현재의 북한경제는 2010년에 비해 오히려 상당히 성장하였으며, 수출과 수입 총액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5·24조치로 인해 남한의 피해가 훨씬 크고 중대하다”면서 각 기업체의 발표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자료에 따르면 금강산기업은 투자액 1900억원, 매출손실 5100억원(2013년 6월말 기준), 현대아산은 투자자산과 사업권손실 1조 3124억원, 매출손실 7160억원, 직원 수 1100여명에서 300명 이하로 감원(2013년 6월말 기준), 강원도 고성군 주민들은 약 5000억원(2013년 5월 기준)의 손실을 각각 보고했다.

남북경협비대위원회(위원장 유동호)에 따르면 5·24 조치로 남북경제교류가 전면 중단된 이후 지난 3년간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는, 남한이 약 89.1억 달러, 북한이 약 22.6억 달러로 남한이 북한보다 4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남북경협기업 및 단체들은 “결국 지난 4년간 시행된 5·24 조치로 북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제재 효과는 미약한 반면, 오히려 남한기업의 파산 및 실직은 매우 심각한 상태”라며 “5·24조치는 남한기업만을 죽이는 자해행위로까지 지적되는 실정”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정청래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금강산 관광기업 747곳과 남북경협기업 1148곳이 개성공단 기업 123곳보다 휴·폐업수나 피해규모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정 의원은 “개성공단이 한반도 평화의 마지막 보루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전 국민이 알고 있으나 금강산 관광 및 남북경협도 역사적인 남북교류의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한 사업으로써 그 경중을 따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5·24조치는 자해행위?
남북경협 기업인들에 따르면 남북교역 중단 및 감소는 이명박 정부 등장과 이어진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 등으로 진작부터 취해져 왔었다. 5·24조치는 다만 그러한 흐름에 쐐기를 박은 상징적인 조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평양에 공장을 둔 ‘아리축구화 공장’은 5·24조치로 북한 진출 문이 막히자 현재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아리축구화 측은 하루빨리 평양의 문이 열리길 열망하고 있다. 2004년부터 금강산 관광 가이드, 남북교류 사업 등을 하다가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되면서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되어야 했던 정성혜씨는 “금강산 관광의 문이 이렇게 오래도록 닫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남북한 청소년들이 금강산에서 한데 어우러지고 남한 청년들이 남북경협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치킨집으로는 처음 2007년 6월 평양에 ‘락원 닭고기 전문식당’을 열었던 최원호 사장은 5·24조치 훨씬 이전인 2008년 3월부터 북한엘 못들어가고 있다. 정부의 남북교역 중단 때문이다. 평양의 치킨전문점 식당도 일반 식당으로 바뀐 지 오래다. 최 사장은 요즘 세미나나 길거리 시위 등 정부의 대북정책을 성토하는 자리마다 찾아다니며 호소하고 있다. “민간의 기업활동 하나 제대로 못지켜주는 정부가 어디에 있느냐. 한미FTA가 정부가 바뀌었다고 바뀌지 않듯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경제분야만큼은 열어놔야 하는 거 아니냐.”

남북경협 기업인들은 “2008년부터 시작된 남북경협 중단으로 기업에 속한 근로자 8만 명을 비롯해 그에 딸린 가족 등 30만 명에게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주고 있다”며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호소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했던 한 기업체 대표는 금강산 관광 중단 여파로 부인과 딸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자살, 야반도주, 형제간 보증으로 인한 가족 해체도 남북경협기업들이 남몰래 감수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아픔이다.

남북교역 중단은 일반 국민에게도 손해를 끼치고 있다. 남북포럼 등 남북경협 기업인들은 2012년 8월 ‘5·24조치 해제 탄원서’를 통일부에 제출했었다. 탄원서엔 남북교역 중단으로 인한 국내 피해가 상세히 적시돼 있다. 북한 수산물 중 국내시장의 70%를 차지했던 해주산 바지락의 경우 공급이 중단되자 국내 판매가격이 2∼3배나 상승했다. 한때 번창하던 조개구이집이 갑자기 사라지게 된 것도 북한산 어패류 공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펼친 북어’ 가격이 7~8배 뛰었던 것도, 개성공단 인근의 대표적인 남북 위탁가공업이었던 ‘깐 마늘’ 가격이 두 배 이상 폭등했던 것도 다 남북교역 중단 여파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5·24조치로 국내 176개 위탁가공 업체들이 일제히 북한에서 철수하면서 과거 업체들의 구매 거래선이었던 유럽 업체들이 발빠르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강주원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조중 접경도시인 단동의 조선족, 북한 사람, 북한 화교, 남한 사람의 관계 연구를 통해 5·24조치 이후 큰 변화가 있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강 연구원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단동의 한국인들은 5·24 이전에 2000여명이었지만 2013년 현재 1000여명으로 줄었다. 떠난 이들은 대부분 5·24 탓에 대북무역을 계속할 수 없었던 이들”이라고 설명했다. 단동을 떠난 한국인들의 상당수는 동남아 등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았지만 인건비, 환경 등 모든 면에서 북한에 비할 바가 안된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단동을 떠나는 한국인들이 5·24조치 해제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조선족과 북한 화교는 5·24조치가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게 강 연구원의 설명이다. 2008년 단동에 넘어온 북한화교의 경우를 들었다. “이 친구는 5·24 이전에는 관광객에게 안마소나 소개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5·24조치 이후 대북 무역 등을 하면서 한국 돈으로 1억원 짜리 아파트를 샀다. 이렇게 5·24조치로 한국인들이 물러난 자리를 조선족과 북한화교가 채워갔다.”

남한과의 관계가 끊긴 북한이 중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는 증거는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의 통계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2013년 남북교역은 12억 달러로 전년 대비 14% 감소한 반면 북중무역은 65억 달러로 10% 증가했다. 남북교역은 2007년 북중무역의 90%까지 근접했었지만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해마다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난해엔 북중무역의 18%까지 급락했다(표 참조).

   
 

누구를 위한 5·24조치인가?
이처럼 경제지표에서만큼은 정부가 더 이상 5·24조치를 지속할 명분이 없어 보인다. 북한·통일 전문가들도 압도적으로 5.24조치 해제 내지는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경실련 통일협회(이사장 이종수)가 5·24조치 4주년을 앞두고 지난 5월 8~20일 사이 북한·통일 전문가 113명을 대상으로 한 전자우편 설문조사에서 “5·24조치는 해제 또는 완화되어야 하는가?”란 질문에 91.15%인 103명이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아니다”란 응답은 10명에 불과했다. 5·24조치 해제 또는 완화에 ‘예’라고 답변한 가장 큰 이유로는 “남북관계의 확대 및 발전을 위해서”(64명/ 62%), “긴장완화를 위해서”(26명/ 25%), “기타”(9명/ 8.7%), “북한에 대한 실질적 제재효과가 적어서”(4명/ 3.8%) 순이었다. 반면 5·24조치 해제 또는 완화에 ‘아니오’라고 답변한 이유로는 “북한의 천안함 사태에 대한 사과 및 재발방지가 없어서”가 6명(60%)으로 가장 많았고, “북한에 대한 실질적 제재효과가 커서”와 “기타”가 각각 2명(각 20%)이었다.

이 같은 설문조사와 관련 경실련 통일협회는 “더 이상 5.24조치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5.24조치 전면적 해제 또는 완화를 통해 남북대화를 즉각 재개하고,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5·24조치 해제 목소리는 비단 경제나 통일 영역에서만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과 올 1월, 3월 잇따라 제기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DMZ 세계평화공원, 통일 대박, 드레스덴선언에는 하나같이 5·24조치가 디딤돌이 아닌 걸림돌이 될 요소들을 담고 있다. 파트너인 북한과의 협력, 교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통일 단체를 중심으로 ‘정부가 5·24조치에 대한 전향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통일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5·24조치는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따른 것으로 당시부터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요구한 ‘책임있는 조치’에 대해 북한의 변화가 없기에 우리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갑자기 정부가 입장을 바꾸면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우리 정부로서는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처벌로써 북한에 대한 인적·물적 교류를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던 만큼 조치를 풀기 위한 북한의 입장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일관되게 ‘남한의 자작극’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5·24조치를 풀 명분이 필요한 정부로서는 해법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통일부 관계자는 다만 “드레스덴 등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추진될 것”이라며 “사안에 따라 단계적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칙은 대북 인적·물적 교류 중단이라는 5·24조치를 유지하겠지만 특정 사안에 따라서는 교류나 협력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북한의 공식 사과나 태도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먼저 5·24조치를 철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길을 제시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나 드레스덴 구상 등 남북경협의 예외사업을 많이 추진해 자연스럽게 5·24조치를 해제하는 효과를 내는 방안 ▲여야가 민간 경협에 대해 5·24조치 완화 내지 해지를 합의하고 이를 정부에 건의하여 해제하는 방안 ▲출범을 준비 중인 통일준비위원회에서 통일경제의 비전과 구상을 수립하고 이의 추진을 위해 자연스럽게 5·24조치를 해제하는 방안 ▲북한과 접촉해 신뢰 구축, DMZ 평화공원, 나진-하산 프로젝트, 드레스덴 구상의 실현 등에 대해 협력하고 대신 금강산 관광 재개 및 5·24조치를 해제하는 방안 등이다.

   
▲ 5.24조치가 내려진 지 4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5월 23일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등 통일 관련 단체들이 정부의 5.24조치 해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광화문광장에서 열고 있다. ⓒ유코리아뉴스DB

5·24조치 해제? 근본적인 처방이 답!
이참에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남북 경제 교류만큼은 지속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남북관계에서의 정경분리다. 이것은 대선 전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이기도 했다. 그만큼 정부 입장에서도 시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과 대만의 정경분리 모델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중국과 대만은 정치·군사적으로는 끊임없이 대결해 왔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교류가 이어졌다. 심지어 1967년 군사적 충돌 직후에도 경제교류가 계속됐다. 경제협력을 최우선시 한 양국의 공통적 견해 때문에 가능했다. 이같은 중단없는 교류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계속된 경제 통합과 정치 안정의 밑거름이 됐다. 꾸준한 교류 끝에 통일을 달성한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 다음날인 1월 17일자 중앙일보 칼럼에서 독일의 ‘모세관모델’을 자세히 소개했다. “1982년 서독 학생 5000명이 동독을, 동독 학생 1250명이 서독을 방문했다. 그들은 민박을 통해 서로를 피부로 느끼고 이해하게 되었다. 83년 동독을 방문한 서독 학생이 1만3000명이나 되자 위기를 느낀 동독이 학생 교류를 중단했다가 2년 후 재개해 통일될 때까지 계속된다. 동시에 88년까지 50개 이상의 동·서독 도시들이 자매관계망에 편입되어 서독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동독의 자매도시 주민들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지원했다. 촘촘한 시민사회의 연결망은 인체의 구석구석 피를 공급하는 모세혈관에 비유해 모세관(Capillary) 방식으로 불렸다.”

이에 대해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6·15 남북정상회담 14주년 기념 학술회의 발제를 통해 “국민을 당사자로 만드는 것으로 말초신경모델과 통하는 것”이라며 “만나는 현장에서 모델이 해결되면 맨 꼭대기 문제는 해결이 쉽다는 것이다. 남북간 영역별로 교류가 이뤄지면 민간은 민간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적극적인 호응 입장을 밝혔다.

김영윤 물류포럼 대표도 “남북경제공동체 추진을 위해서라도 정경분리를 해야 한다. 정치와 경제가 너무 밀착돼 있어서 빈틈이 없다. 지자체가 창의적으로 교류하고 북한이 실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는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좀 더 실제적이다. 민간기업이나 인도적 지원단체에 대한 정부 승인 절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기존 남북교류협력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교류협력 활성화라는 법 취지에서 보면, 오히려 민간 기업이나 인도적 지원 단체에 재량권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특히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미 많은 지자체들이 지역적 특성에 따라 지방간 남북교류협력을 추진하고 있고, 제도적 인프로도 구축돼 있는 만큼 지금처럼 중앙정부에 모든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것은 지방분권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아예 내각책임제 도입을 들고나왔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다 보니 대통령이 5·24조치 같은 걸 취해도 남북관계의 특성상 기존 법률로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남한의 대통령선거가) 승자독식 제도이기에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의식이 높아졌으니까 이제 우리나라도 내각책임제로 갈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 23일 국회의장 직속 '국회 헌법개정 자문위원회'(위원장 김철수)는 국회 양원제 부활 등 헌법개정 조문 시안을 국회의장에게 보고했다. 자문위는 “국가의사를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고 통일 후 지방연방제를 대비하기 위해 국회를 하원인 민의원과 상원인 참의원으로 나눴다”고 설명했다. 헌법개정 시안에 따르면 행정부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로 이원화되고 대통령은 외교·국방·통일 등을 관할하고, 국무총리는 국무위원, 행정 각부 장관을 통솔한다. 하지만 국회 쪽은 일단 기존 단원제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온도가 상승하는 지하수는 결국 지표를 뚫고나오기 마련이다. 남북교류를 바라는 민간의 열망은 식을 줄 모른다. 학자들도 정치권도 이젠 당당히 이야기하고 있다. 남북 교류와 협력밖에는 살 길이 없다고. 반면 5·24조치를 지속해야만 하는 정부는 더욱 궁색해 보인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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