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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맘' '서초동 엄마'가 세월호 1인 시위에 나선 이유

기사승인 2014.05.24  11: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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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간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 벌인 윤은주 평통기연 국장 인터뷰

여름 햇볕이 맹렬하게 내리쬐던 22일 정오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 ‘서초동 엄마’를 자처한 윤은주(평통기연 국장)씨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다. 알이 큰 선글라스에 금 귀걸이와 금 목걸이를 하고, 세련된 옷차림까지. 순간 시위하는 거 맞어?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윤씨는 지난 12일부터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가장 햇볕이 뜨거운 시간에 나와 매일같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안산지역이 아닌 강남에서 이 사건이 발생했어도 정부가 이런 식으로 대응했을까'라는 말을 들으며 마음이 많이 아프고, 빚진 마음까지 생겼어요." 윤씨는 ‘엄마’는 다 똑같은 마음이라면서, “서초동 엄마가 미안해”란 마음을 전하고 싶었단다. “시위현장에 오는 사람들은 내 뒤에 무슨 단체가 있는지 자꾸만 물어본다. 그런 건 없단 걸 내 나름대로는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 광화문 1인시위에 나선 '서초동 엄마' 윤은주씨.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서초동 엄마’만이 아니다. 그녀는 ‘통일전문가’이고,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이화여대에서 북한학을 전공한 박사이고, 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국장을 맡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본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통일이 뭔지를 묻자, 윤씨는 “민주주의와 분단 문제는 항상 동전의 양면”이라고 답했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통일 논의를 정당화시키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분단 구조를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이용했다. 안보 차원에서 공안 사건을 일으키고, 먹히지 않을 땐 또 다른 통일 담론을 주도해 국가의 공권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계속 이어나간 거다. 이러한 방식이 공교롭게도 1970년대와 2014년, 이렇게 겹친다.”

윤씨는 그러면서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이 방식이 아직도 먹힌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 이에 대해 침묵하는 사람들, 종북 프레임이 너무 두렵거나 아니면 더러워서 그 물에 몸조차 담그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서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으로서, 바른 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난생 처음 1인 시위에 나선 또 다른 이유다다.

   
▲ 지난 23일 윤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광화문 1인 시위 종료를 알리고, 또다른 엄마의 참여를 요청했다.

윤씨와의 인터뷰가 끝난 오후,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전격 경질됐다. 다음날인 23일, 윤씨는 광화문 1인 시위를 종료했다.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현실적 대한민국.. 광화문광장에서 들여다 본 지난 2주의 시간이었어요. 그러나 어제 이만열 장로님께 여쭌 대로 역사는 끊임없이 전진 하겠지요? 전 제몫을 다하자고 다짐, 또 다짐하며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뭐, 그 일상 또한 전장이지만..ㅠㅠ”라고 밝혔다. 윤씨는 이제 가정주부로, 일본선교 여행으로, 통일 관련 사역과 학술활동으로 바쁘게 지내게 된다.

윤씨는 본인의 빈자리를 대신할 ‘또 다른 엄마’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광화문 엄마 오지숙씨를 혼자 두어 영 맘이 편치 않아요~ 제 피켓 무한 빌려드림. 담주부터 그녀 옆자리서 함께하실 엄마 안계실까요??”

아무 윤씨와 같은 마음을 가진 다른 수많은 '윤씨'들이 마음으로 몸으로 그 빈자리를 메꾸지 않을까. 다음은 ‘서초동 엄마’이자 ‘통일전문가’인 윤씨의 1인 시위가 끝나기 하루 전, 1인 시위 현장에서 가진 인터뷰 전문.


-강남 엄마, 박사학위 소지자. 1인 시위와는 어울리지 않는데, 예전에 해봤나?
1인 시위는 처음이다. 혼자서 이렇게 얼굴 내놓고 한 건 처음이다. 사람들이 신상공개 하는 걸 두려워하니깐 대놓고 하는 거다. ‘안산 지역이 아닌 강남에서 발생했어도 정부가 이런 식으로 대응했을까’ 이런 얘기도 들었다. 마음이 많이 아팠고, 빚진 마음까지 생겼다. 하지만 엄마는 다 동일한 마음이다. ‘서초동 엄마가 미안해’란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서초동 엄마’라고 내세움으로써 종북 프레임으로 딴지 걸 수 없단 걸 분명히 하고 싶었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내 뒤에 무슨 단체가 있냐고 자꾸만 물어본다. 그런 건 없단 걸 내 나름대로는 상징적으로 얘기하고 싶었던 거다.

-지금 자녀가 몇 학년인가?
대학교 3학년인 딸이 있다.

-딸은 뭐라고 하나?
딸도 적극 동조하고 있고, 한 번은 피켓팅하러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과제와 팀플과 중간고사와 기타 등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같이 할 순 없었다(웃음). 그래도 계속 권면은 하고 있다.

-1인 시위에 나설 때 남편(최은상 평통기연 사무총장)은 뭐라고 하던가?
걱정한다. 남편은 소모전이라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의 감수성이 다른 것 같다. (세월호 사건 이후) 아직도 일상으로 못 돌아가겠다. 국정원도 두렵지 않고, 북한도 무섭지 않지만, 땡볕만은 무서워하는 평범한 엄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뜨거운 시간에 나왔다. 한번은 저희 교회의 청년 한 명이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그 청년이 국정원 민간사찰 이후로 정부에 대한 비판 글을 자유롭게 못 올리겠다는 거다. 직장생활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 청년은 두려워서 그랬을까?
맞다. 그래서 그 청년은 이제 교회 카톡방에만 비판 글을 가끔씩 올린다. 그걸 본 순간, ‘이 사회가 다시 두려움의 카르텔을 형성해가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교회 청년들에게 ‘지금 세상은 다르다. 직접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여기서 시위를 하고 있으면 보수단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온다. 그들은 피켓 내용을 보고는 불법 아니냐고 지적한다.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면, 불법인 시대를 겪었던 이들인 거다. 되려 그들은 경찰에게 왜 절 안 잡아 가냐고 묻는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교육되지 못한 채 그걸 누렸다. 그러다 이게 얼마나 고마운 지도 모른 채 살았었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 윤씨가 1인 시위를 하던 지난 22일 오후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남재준 국정원장이 전격 경질됐다는 뉴스가 떴다.
   
▲ 1인 시위를 벌이는 '서초동 엄마'를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1인 시위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지난 주 월요일(5월12일)부터 시작했다. 지금은 2주차다. 지금 옆에 있는 오지숙씨가 1인 시위하는 걸 페북으로 본 게 발단이 됐다.

-통일 전문가의 입장에선 어떤가.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민주주의와 분단 문제는 항상 동전의 양면이다. 70년대부터 80년대, 90년대 계속 그래왔다. 지금 피켓(김기춘 비서실장, 남재준 국정원장,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도 써놨지만, 이들이 다 그 당시 활약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다시 공안사건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는 거다. 유우성 간첩조작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3분 사과로 끝냈다. 그래서 이러면 정말 안 되겠다 싶었다. ‘통일맘’이 내 별명이다. 허나 통일맘은커녕 이래선 통일을 못할 거라는 위기감이 많이 작용했다.

-지금 상황에서 통일을 말한다는 건 참으로 공허하단 생각이 든다.
‘통일대박론’이 올 초부터 나왔다. 72년도로 돌이켜보자. 7.4남북공동성명서 발표할 때도 지금과 똑같이 통일담론이 이렇게 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남북한에는 각각 유신헌법과 주석제가 형성되고 말았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통일 논의를 정당화시키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분단 구조를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에 불과했다. 정권 안보 차원에서 공안 사건을 일으키고, 공안 정국이 먹히지 않을 땐 또 다른 통일 담론을 주도하면서 국가의 공권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계속 이어나간 거다. 이러한 방식이 공교롭게도 1970년대와 2014년, 이렇게 겹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김기춘, 남재준 이들이 다 그때 유신헌법에 참여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뭔가?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이 방식이 아직도 먹힌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 이에 대해 침묵하는 사람들, 종북 프레임이 너무 두렵거나 아니면 더러워서 그 물에 몸조차 담그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으로서, 바른 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1인 시위에 나선 거다.

-그래도 엄마로써 1인 시위 나서는 게 쉽지 않을텐데 대단하다.
아줌마 스피릿이라고 할 수 있다(웃음).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싶은 건?
박 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 최종 책임자는 본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가장 큰 대책으로 내놓은 게 해경 해체였다. 하지만 김기춘, 남재준, 김장수 이 세 사람이 책임자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분들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적어도 담화내용과 국민 사과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지금 그렇게 요구하고 있다.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교회와 이번 세월호 사건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래도 외면할 수 없다고 보는데.
내가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님께 1인 시위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나왔다. 목사님도 개인적으로는 지지해줬고, 무슨 불미스런 일이 있을 땐 보호해주고, 기도도 열심히 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반대로 교인들은 냉랭한 상황이다. 다만 제자훈련을 함께 한 청년들이 날 믿고, 1인 시위 대열에 참여해주기도 했다. 그 정도의 희망이었다. 세월호 사건은 한국교회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경종을 일으키기 위한 예언적인 선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인 시위는 내게, 무언가를 주장하기 위한 수단이기보다 스스로 회개와 자복의 시간인 셈이다. 한국교회는 숱한 죄악과 더불어 분단 질서에 반공이데올로기가 함께 해왔고,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아파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참회하는 거다.

성상현 기자 jacksu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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