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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기사승인 2022.11.23  08: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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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교수님, 이번 이태원 참사로 제 가족이 피해자가 되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울먹거리는 제자 앞에서 망연자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북향민 가족들도, 제자와 외국인 친구들도 참사의 피해자라니. 10월 29일 참사는 나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하지만 애도도 마음놓고 할 수 없었다. 국가는 친절하게 애도의 강도와 범위, 기간을 규정해놓고, 문제점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재난의 정치화’라며 공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도기간이나 이후에도 현 정부에는 책임지려는 사람은 여전히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5항에 따라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부처 기관장들은 “우리는 할 만큼 했다”,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으나 이 사태가 일어날 줄 몰랐다”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보호와 안전에 무한책임이 있음에도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는 참사 다음날 유족을 위로하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동향을 파악하는 조사를 하며 이번 참사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와 연대의 규모가 커질 것을 우려하였다. 위정자들에겐 희생자의 안위가 아닌 정권의 안위가 중요했던 것이다.

심지어 유족들의 요청으로 이들을 지원하게 된 필자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필자가 유족들을 직접 만나서 소송하자고 접촉하고 다닌다는 식으로 보도를 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엄청난 과대평가다. 나 역시 평범한 일반 국민이기에 유가족 분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만의 애도 방법으로 희생자분들의 가족과 부상 피해자분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이분들이 먼저 나서서 나에게 법률 지원을 요청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본 소송을 추진하기 전, 쉽지 않은 소송이고 공격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 정도라니. 변호사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데 하물며 유가족 분들은 어떨까.

필자는 지금껏 살면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하였다. 그래서 스스로를 단무지라고 부른다. 단순 무식하게, 해야 할 일이면 끝까지 온몸을 던지는 식이다. 이번 10.29. 할로윈 참사도 사람들에게 도움 요청을 받았고, 무엇보다 현 정부에서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에,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진행 중이다. 나는 역사와 양심의 반역자가 되기 싫다.

해당 법률검토와 변호인단 구성 후 국가배상청구 소송인단 모집을 11월 8일부터 시작하였다. 법률 상담을 위해 이메일 주소와 사무실 번호를 공개하면서 하루 전화 중 10명 중 5명꼴로 10월 29일 참사의 유가족 분들이나 지인들 상담, 3건은 응원하는 연락, 2건은 욕설을 하거나 저주를 퍼붓는 전화가 오곤 한다.

지금까지 유족분들과 상담하면서 느낀 건 그분들이 너무나도 분노하고 있으며, 동시에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국가가 지정한 애도 기간 동안 유가족들은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아픔을 표출할 곳도 없었다. 책임을 다하지 않은 국가에 대해 절규하고 원망하고 소리지를 수 없었다. 죽음을 정치화한다는 비판 때문에 애도 기간에는 피해자인 유가족조차 숨죽여야 했기 때문이다.

참사 발생 직후, 한남동 주민센터에 있던 꽃다운 청년들의 시신들은 연고도 없는 서울과 수도권 각 병원으로 실어 나르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연락이 되지 않아 찾아오는 유가족들이나 지인들이 애타게 물어봐도 현장의 공무원들은 자신들도 모른다면서 이름을 확인시켜 줄 수 없다 하였다. 지휘부의 지시나 메뉴얼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이름과 얼굴도 모르는 희생자를 위해 추모할 동안, 유가족들은 자식들의 시신을 찾아 병원을 떠돌아야 했고, 연고도 없는 지역 영안실에서 아이들을 마주한 유가족들은 3일장을 지낼 자신이 없어 화장을 하며 이 끔찍한 사실을 외면하며 피하고 싶어했다. 간신히 살아돌아온 아이가 집 앞에 온 모습을 본 부모들은 처참한 모습에 너무 놀라 기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가에서는 ‘참사’ 가 아닌 ‘사고’로, ‘희생자’ 가 아닌 ‘사망자’로 명명하며 분향소를 만들어 운영하였고, 책임있는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 부정하였다.

희생자 유족이 바라는 것은 진심어린 사과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다. 참사 발생 전날 20만 명 이상 인파가 몰릴 거라 예측했고, 용산구청장은 참사 전날 할로윈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지만, 당일에는 자신의 치적 홍보를 위해 고향에 내려갔으며, 용산경찰서장은 참사 발생 4시간 전에 112에 경찰 통제를 요청하며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와도 제대로 된 조치 없이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경찰 특수본에서는 참사 당일 실질적 컨트롤타워였던 용산소방서장을 입건하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이러한 대한민국 정부와 지방자체단체, 공무원들의 무책임, 무공감, 무능력에 기반한 위법적 행위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국가손해배상이 인정될 여지가 크다.

섬처럼 흩어져 있고 고립되어 있는 유가족들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없어 많이 갑갑해 하고 힘들어하신다. 그래서 11월 말 유가족분들을 모시고 간담회를 열어 유가족 분들끼리 서로 소통과 연대하고, 눈물흘리며 위로할 수 있는 자리를 준비 중이다. 불현듯 닥친 이 아픔, 소중한 가족과 지인을 잃었다는 고통,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그 절망과 슬픔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이제 국가 애도의 시간은 끝나고 우리들의 애도의 시간이 왔다. 다시는 10.29. 할로윈 참사처럼 피해자가 죄인이 되어 숨죽여 지내고, 가해자인 국가가 ‘인권의 화신’인 듯 큰소리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유가족의 분노와 절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전수미/ 굿로이어스 대표변호사

전수미 waveofpe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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