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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실용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기사승인 2022.07.12  09: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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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여 되었지만 임기 초부터 우려스러운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대통령의 취임 열흘 만의 어수선한 틈을 비집고 찾아온 미국 바이든 대통령을 맞이하여 정부는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 참가를 조건 없이 수락했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에게 반도체, 전기차 공장 건립 등의 큰 선물을 안겨준 반면 우리가 얻어낸 현실적인 성과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신냉전이라 불리는 혼돈의 이 시국에 우리가 미국 진영에 선 것과 IPEF에 가입한 것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급한 미국을 역이용해 우리에게 절실한 우주항공, 군사기술의 원조나, 아니면 경색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요구했더라면 어땠을까? 미국의 부탁이라면 뭐든 받아줄 정도로 한국이 쉬운 나라는 아니지 않는가.

정부의 외교적 대응에 대한 우려는 얼마 전 나도(NATO) 정상회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나토 방문일정에 맞춰 이뤄진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책임을 지게 만들 것”이라는 속 시원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이 발언 직후 러시아는 대우조선과 체결한 LNG선 3,379억원 규모의 계약을 즉시 해지 통보했다. 이에 러시아 수주가 많은 삼성중공업도 크게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러 제재에 동참한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불쾌감은 계속 감지되어 왔다. 지난 5월, 13년 만에 원전수출에 성공했던 한국수력원자력과 러시아간 37조원 규모의 거래도 무산위기에 처해 있다.

더욱 가관이었던 점은 나토 정상회의 중에 나왔던 최상목 경제수석의 발언이다. 최 수석은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시대는 끝나고 있다”고 단언하며 “중국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어 중국을 대신할 시장이 필요하다”면서 유럽을 그 대안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중국을 새로운 위협으로 간주한 나토 안보회의에서 한국의 경제수석이 한 발언치고는 그 시기와 장소 모두 적절치 않았다고 본다. 중국 언론은 이를 예의주시하며 불쾌감을 쏟아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과의 교역량은 정권과 무관하게 꾸준히 증가하여 왔다. 지난해 우리의 대중 수출액은 1,630억 달러로 전년보다 23% 증가했고, 무역흑자 규모는 600억 달러에 이른다. 우리의 총 무역흑자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6%에 이르고, 요소수처럼 우리가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원자재는 600여 개에 이른다. 이제 한국의 최대 원자재 수입국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한국에게 중국은 제1의 무역국이고 중국의 입장에서도 한국은 5대 무역국이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중국의 물류 인프라와 8억이라는 생산인구는 인도, 베트남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거대한 시장이다. 좋든 싫든, 현재 우리의 교역 1위 국가는 엄연히 중국이라는 점이다.

물론 점점 증가하는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것은 우리가 직면한 과제이며 그런 취지에서 최 수석도 발언했을 것이란 추측은 간다. 그러나 경제수석이 군사동맹 협의체에서 공개적으로 탈중국을 선언하는 것이 향후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지 한번 더 심사숙고했어야 했다. 경제관료가 안보논리에 매몰되어 성급히 실용노선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사실 한국이 나토 정상회의에 초대받았을 때부터 그들의 요구는 충분히 예견되었다. 따라서 굳이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하지 않아도 됐었다. 함께 초대받은 다른 나라들도 총리나 외교부 장관이 ‘대리출석’한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향후 윤석열 정부는 보다 냉철한 대외인식과 현실인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이미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미국의 패권은 쇠퇴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미국 GDP의 70% 수준까지 추격하게 되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전개된 세계정세, 즉 국제적 분업관계에 기초한 자유무역주의와 세계화의 흐름은 중국의 최종 승리로 귀결되면서 미국은 쓸쓸히 공급망 외교와 기술동맹이라는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도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급격히 하락하고 있으며, 미국 민주당조차도 차기 대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 교체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바이든에 패배했던 공화당의 트럼프는 차기 대선출마를 공식화했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세계 각국은 더욱 철저히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실용주의적 독자노선을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 군사력과 경제력의 근간이었던 달러패권과 기축통화의 지위도 서서히 위기를 맡고 있다. 최근 사우디가 원유를 러시아 루블화로 결제하기로 했고, 미국이 ‘인도태평양’으로 치켜세우며 대중 봉쇄노선의 선봉이 되어주길 고대했던 인도는 러시아 제재 이후 러시아산의 원유를 이전보다 8배 이상 저렴히 구매하며 막대한 실리를 챙기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간파한 이스라엘조차도 미국 달러 통화 보유량을 서서히 줄여가고 있다. 중동과 유럽안보의 지정학적 요충지인 이란과 튀르키예(터키)도 미국이 더 이상 자국의 안보라는 공공재를 제공하지 못하자 러시아, 중국과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독자노선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대러 제재의 틈새를 간파한 러시아는 미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중국과의 밀월관계를 강화하고 인도와 이란과 튀르키예 등과 함께 세계 대륙경제권역의 40%대에 이르는 광활한 국제공급망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을 통해 국가의 재정지출을 아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대중, 대러 봉쇄를 위해 가치와 동맹을 외치며 동맹국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을 계기로 유럽과 우방국가의 연대를 이뤄냈고 다른 한편에서는 역외전쟁과 금리인상을 통해 전 세계 안정자산의 미국 투자를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향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미국의 패권은 더욱 쇠퇴할 가능성이 높다.

냉철한 현실인식이 없는 관료층의 맹목적 동맹론과 이에 기초한 냉전적 사고는 우리의 국익을 해칠 뿐이다. 미국이 예전의 미국이 아닌 것처럼 우리 한국도 예전의 한국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비동맹 또는 지정학적 위상을 활용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튀르키예, 인도, 사우디, 이란의 외교노선을 관심 있게 지켜보길 바란다. 이제 한국은 군사강국이자 기술강국이 되었다. 그렇게 처신하지 못하는 것은 국익을 위해 우리의 목소리를 낼 용기와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은 임기 초라 질책보다는 격려를 해줘야 맞다고 본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이장한/ 뉴코리아 사무국장, 평화통일연대 전문위원

이장한 janghan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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