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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가 변하고 있다

기사승인 2021.10.13  08: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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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266호

침묵을 깨고 움직이기 시작한 북한

한반도 정세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급격하게 경색된 한반도 정세는 2020년 상반기 코로나 팬데믹, 2021년 1월 미 바이든 행정부 출범, 동년 7월 도쿄올림픽 등을 거치면서도 경색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미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정책을 이어간다고 천명했고, 중국이 맞대응함에 따라 국제사회는 미·중 대결의 지속과 심화를 우려하고 있다. 북한은 국경봉쇄와 함께 국제사회와의 접촉을 멈춘 채, 자력갱생에만 몰두해 왔다. 남북관계도 단절된 채 2년 반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팬데믹의 출현과 함께 마치 외교도 실종된 듯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각국별로 백신접종률이 올라가면서 ‘위드 코로나’를 택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세계 경제는 갑작스런 경기회복의 역풍으로 오히려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나올 정도다. 코로나로 멈추었던 글로벌 네트워크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석탄 부족으로 에너지난에 봉착하자 호주와의 석탄무역을 재개하기로 했다. 미·중간에는 2021년 중에 화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기시다 내각이 출범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 와중에 북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속된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시설 재가동 등 군사적 행동을 멈추지 않는 가운데 침묵을 깨고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1년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2년 전의 대외정책과는 결이 바뀐 대미 및 대남정책을 밝혔다.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제시하면 대화에 응하지만 그 이전에는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의 정치정세 전망, 급변하는 국제역량관계를 상호 연관 속에서 엄밀히 연구 분석한데 기초하여 북한의 대미 전략적 구상을 철저히 집행하기 위한 전술적 대책을 마련하는데 만전을 기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했다고 했다. 한마디로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와는 달리 무척 신중해 보이지만 ‘남한을 통한 북·미 중재와 직접 대화’의 기본 틀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비록 남한에 대해 이중 잣대와 적대시 정책 철회 등을 들고 나왔지만, 이전과 같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이나 전략자산 도입 중단이라는 구체적 사안을 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라며 남북통신연락선을 다시 정상화했다. 대미 전략적 구상을 집행하기 위한 전술적 대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듯하다.

 

본격화되기 시작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한반도 정세는 국제 정세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국제 정세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때리기’에 집중한 듯했지만, 실제로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세계 때리기’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내세우며 출범하여 반년에 걸친 정책 검토를 마치고 정상화 작업을 시작했으며, 미국을 주축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복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G7 정상회담, 기후변화에의 대응, 글로벌 통상질서의 회복 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중국 정책만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이어가고 있지만, 독자적 행동을 했던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르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복원해서 ‘중국 때리기’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냉전 초기였던 1947년 조지 캐넌의 봉쇄 전략 보고서로부터 시작된 미국의 ‘봉쇄정책’은 해를 거듭하며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고, 급기야 1990년대 냉전 해체의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 봉쇄정책의 핵심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대상으로 발전된 봉쇄정책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2021년 3월 알래스카에서 가진 미·중 고위급 접촉은 봉쇄정책 재가동 여부를 판단하는 전초전의 성격이 강했다면, 미·중 화상 정상회담을 합의한 스위스 취리히 접촉은 본격화를 알리는 자리였다. 중국 역시 트럼프 행정부 당시와는 다른 대응책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2022년 2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과의 타협점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제질서의 큰 변동이 예고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9월 시정연설에서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강권과 전횡...미국의 일방적이며 불공정한 편 가르기식 대외정책으로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구도로 변화되면서 한층 복잡다단해진 것이 현 국제정세 변화의 주요 특징”이라고 규정했다. 북한 역시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4월 미국은 대북정책 검토를 마치고 북한에 구체적인 대안과 함께 무조건 대화 재개를 제시했다. 북한 역시 5개월에 걸친 검토를 마치고 전술적 대책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미국의 제안과 국제 정세의 변화를 고려할 때 미국과 대화에 나설 시점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2012년 김정은 정권이 등장해서 모든 대외관계를 단절하고 핵무력 개발에 집중한 이후, 2017년 11월 핵무기 완성을 선언하고 평창올림픽 참가와 대미 직접 대화를 시작했던 당시와 유사하다. 올해 1월 8차 당 대회에서는 밝히지 않았던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의 존재 사실을 알렸다. ‘전략무기 최우선 5대 과업’으로 초대형 핵탄두의 생산, 1만 5천km 사정권안의 로케트 개발, 극초음속활공비행전투부의 개발 도입, 수중 및 지상고체발동기 대륙 간 탄도로케트 개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핵전략무기의 보유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극초음속 미사일 연구개발도 5대 과업에 속한다. 철도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도 최우선 과업의 일환일 것이다. 아직은 미국을 직접 겨냥하는 레드라인을 넘지 않지만 5년 내에는 넘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군사적 위협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모색하는 형식이다.

아울러 북한 내부로도 국경폐쇄를 지속할 명분이 약해졌다. 방역을 최우선 과제로 함에도 불구하고 집단노력에 동원됐던 수십 명의 대학생들이 코로나 의심 증상으로 집단 격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대북지원용으로 마련한 코로나 관련 의약품이 1년여 만에 처음으로 남포항에 반입됐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백신공급이 원활한 선진국들은 ‘위드 코로나’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지만, 백신부족과 의료시스템이 부족한 개도국들은 아직도 코로나 확산에 무방비 상태다. 북한이 원천적으로 차단했다고는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이처럼 북한이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남한의 협력이 중요하다. 북한이 오래전부터 제기해 왔던 이중 잣대와 적대시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남한의 중재를 기대하지만 하노이 회담의 실패를 거울삼아 신중함을 보이는 명분일 것이다.

 

대화의 시작이 없고서는 대화도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한 ‘대미 전략적 구상’은 무엇일까? 북한은 적대시 정책 철회 등을 내걸며 군사위협을 수단으로 삼고 있지만 결국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해 안정적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북한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핵개발에 집중하면서도 내부적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왔다. 시장경제를 공식경제 부문으로 수용했고, 20여개의 경제개발구를 설치하여 외자 유치를 준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직접 대화를 통해 미국과 관계가 개선되면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김 위원장은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고 자책하며 대미관계는 장기적 과업이므로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자력갱생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그 주장의 골격은 변함없어 보이지만, 다시 미국과 대화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다만 2년 전과 달리 북한이 최대한 유리한 위치에서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전술적 대책들을 가동하고 있으며, 대남유화책 역시 전술적 대책의 범주에서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북한이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바이든 행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복원하여 본격적으로 ‘중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봉쇄정책은 미국의 독자적 힘을 이용해 중국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 냉전시절 구소련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전범 국가였던 서독과 일본을 활용했고, 중국과의 데땅뜨를 통해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모색했던 사례를 감안해야 한다. 지금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중 화상 정상회담은 본격적인 미·중 대결의 향방을 정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여기서 미·중간의 직접적 현안에 대해서는 첨예한 대립과 대결이 예상되지만, 이외의 현안에 대해서는 협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북한 문제도 미·중간 협력의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이 ‘불공정한 편 가르기의 신냉전’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를 의미하는 듯하지만, 북한을 ‘편 가르기’의 한편에 넣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이 지난 3월 알래스카 회동에서 서로의 입장을 확인했듯이 미국은 북한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 재개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직접 확인해 보고자 한다. 한국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주요 일원으로 참여하기로 했으며,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확인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구체적 제안과 함께 무조건 대화 재개를 제시했던 것은 아마도 하노이 회담 이전 수준에서 대화를 재개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하노이 회담 당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내놓는 대가로 5개 부문의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미국은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보상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국제사회는 유엔제재로 대응하고 있다. 일단 만나서 하노이 회담 이전 수준에서 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지를 미국과 북한 모두가 판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그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참가하는 종전선언을 다시 들고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로 가는 입구”임을 분명히 했다. 종전선언이 목표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목표인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대화테이블로 복귀하여 비핵화 논의를 재개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에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인 중재의지를 표명했으며, 바이든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지지했다.

북한이 과거의 행태로 복귀하여 군사적 위협과 벼랑끝 전술을 재연하는데 시간을 허비할 경우 변화하기 시작한 국제정세 속에서 북한의 고립은 가중될 뿐이다. 편 가르기가 아니라 아무도 편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마침 북한이 대화를 재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면 좌고우면할 것 없이 대화테이블로 복귀하는 길이 최선이다. 한국은 대화테이블을 차릴 준비를 했으며, 미국은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 북한이 대화에 진지하게 임하는 것, 그것이 곧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는 길이다. 배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평화재단 hyeonan@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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