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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는 세 가지 착시와 우리의 의무

기사승인 2021.08.27  14: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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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263호

미국의 실패?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결정했으며 세계는 베트남전쟁의 데자뷰를 떠올리고 있다. 미국의 실패 담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이다. 그러나 베트남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은 성격이 다르다. 베트남전쟁은 냉전기 미국의 확장전략 차원의 개입이었으며, 천문학적인 인적, 물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남베트남을 지키지 못했다. 베트남전쟁은 미국에게 명분과 실리가 없는 소모전이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 지역이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의 외교안보전략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전환되었다. 9.11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 조직의 제거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불가피했다. 탈레반은 알카에다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20여 년간 아프가니스탄전쟁을 통해 알카에다 조직은 사실상 궤멸했으며, 미국인들의 숙원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의 제거도 이루어졌다. 이제 미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테러조직의 역량은 현저히 축소되었다. 베트남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목표는 달성된 셈이다.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의 늪으로 불리지만 현지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역사에서 통합적인 중앙정부의 경험은 찾기 힘들며 파슈툰족과 타지크족 등 다양한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슬람 수니파가 다수지만 적대관계인 소수 시아파도 있다. 소련 및 미국과의 전쟁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은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더 복잡한 분파들로 나뉘어졌다.

탈레반 정권은 일사불란한 단일조직이 아니며, 여러 군벌이 모인 집단적 성격이 강하다. 이미 북부동맹을 중심으로 반탈레반 세력이 규합되고 있으며, 정부군 잔존세력도 집결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지형적 특성상 저항세력의 완전한 제압은 불가능하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할 가능성은 미지수이며, 새로운 혼돈은 아프가니스탄의 어두운 미래다.

 

중국의 기회?

중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미국의 실패로 규정하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아프가니스탄과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와칸 회랑으로 연결된 국경을 접하고 있다. 와칸 회랑 북쪽의 타지키스탄은 중국과 광범위한 국경선을 대하고 있으며, 동투르키스탄독립운동(East Turkestan Islamic Movement, ETIM)에서 자유롭지 않다. ETIM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이슬람독립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조직이며, 1990년대 이후 중국에서 각종 테러사건을 벌였다. ETIM은 2000년대부터 같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탈레반, 알카에다, ISIS와 긴밀한 연대를 형성했다. 파키스탄의 탈레반은 이미 여러 차례 중국에 대한 테러를 감행했다. 지난 7월에도 파키스탄 서북부에서 중국인이 탄 버스를 공격해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슬람 수니파 위구르족을 중심으로 2,200여 만 명의 인구가 있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에는 중국 전체 석유의 30%, 천연가스의 34%, 석탄의 40%가 매장되어 있다. 특히 이 지역은 일대일로 정책의 중심인 유라시아 대륙으로 가는 관문이다. 중국이 인권탄압 비난을 감수하며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는 이유이다.

미국의 철수가 임박한 7월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을 순방했으며, 탈레반의 2인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텐진으로 초청해 회담했다. 지난 5월에도 왕이 외교부장은 시안에서 중앙아시아 이슬람 5개국 외무장관과 회담을 했다. 중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을 위한 대테러훈련기지 건설 지원에 합의한 바 있다. 중국이 지원을 약속한 기지가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연결된 와칸 회랑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소련과 미국의 경험을 목도했다는 점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대놓고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는 등 동일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국은 탈레반 정권에 대한 경제지원 등 제한적 개입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고,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안정 확보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탈레반은 ‘이익’보다는 이슬람의 종교적 동질성을 더 중시한다. 중국 정부의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억압에 탈레반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설치된 사실상의 강제수용소에는 100만 명에서 최대 200만 명에 달하는 위구르인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이들에 대한 처우와 인권침해 사례가 공개될 경우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미국의 고민을 중국이 떠안게 된 셈이다.

 

동맹의 위기?

미국이 베트남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철군함으로써 언제든 동맹을 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보수언론 일각에서는 미국이 한국에서도 떠날 수 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 및 아프가니스탄과 한국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국은 2020년 기준 세계 6위의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10위의 중견경제국이다. 한국은 미국이 지원했던 국가 중 가장 모범적인 성공모델에 해당한다.

한국은 50여 만 명의 정예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남북대치 상황에서 수많은 실전경험을 치렀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70여 년 간 한미동맹은 긴밀한 군사협력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는 중국이며, 이 상황은 장기지속형이 될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한 이유 중의 하나는 중국을 보다 강력하게 견제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과연 중국과 국경을 접한 한반도의 28,000여 명의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위협할 때 미 의회는 이를 제약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사실을 상기할 일이다.

바이든 정부 역시 트럼프 정부와 동일하게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이며, 차이가 있다면 ‘화장 안 한 미국’과 ‘화장한 미국’일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가치에 기반을 둔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동맹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의 힘을 덜 들이면서 국익을 추구하고 대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관계는 글로벌동맹으로 진화했다. 한미동맹은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한반도의 공간을 넘어 세계로 확장하였으며, 안보동맹에서 경제동맹, 그리고 세계 이슈에 공동 대응하는 가치동맹으로 진화했다. 이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받는 것에 익숙한 국가가 아니라 안보적 이익은 물론 반도체와 첨단기술 등 미국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많은 국가로 전환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사례와 한국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 셈이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것은 자국의 국익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주한미군의 주둔과 철군의 결정은 철저하게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미국을 붙잡고 애틋하게 대했다고 해서 철군 결정이 바뀌었을 리는 없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은 트럼프 정부에서 이미 결정된 사안이며, 바이든 정부에서 실행되었을 뿐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여론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좀 더 세련되고 안정된 철군 모습이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의무, 포용과 나눔

강대국의 개입과 무력의 사용은 아프가니스탄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스스로 국가의 기틀을 만들고 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핵심이며, 그 길은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국가건설을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야 하며, 우리 역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인한 대규모 난민으로 지구촌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목적지인 동시에 유럽으로 가는 관문인 터키와 그리스 등이 긴장하고 있으며, 이미 유럽은 중동과 아프리카의 난민과 불법이민 문제를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을 위해 한국의 미군기지가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390여 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특별공로자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한국 유입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2021년 7월 역사상 최초로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전환했다.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은 지 70여년 만이다. 한국전쟁에서 수많은 우방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으며, 아직도 비무장지대(DMZ)의 땅속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국의 청년들이 묻혀있다. 국제사회가 지원해준 밀가루와 분유로 우리는 배고픔을 덜 수 있었고, 각종 유무상차관은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국제사회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전 세계 750여 만 명이며, 세계 5위권이다. 멀게는 일제를 피해, 가깝게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이주한 한인들은 모두 각 국가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만일 각 국가들이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배척했다면 아직도 세계를 떠도는 유랑민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입국한 380여 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은 대사관, 병원, 직업훈련원 등에서 우리를 도왔던 현지 조력자들과 그 가족이며, 탈레반의 우선적 처벌대상이었다. 당연히 수용해야 하며 합당한 대우가 마땅하다. 다른 아프가니스탄 난민들도 수용해 우리가 받은 만큼, 그 이상으로 국제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나아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다른 많은 지구촌 난민들에 대해서도 힘닿는 만큼 수용과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10~2020년 간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1.3%로 G20 국가 중 18위의 하위권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인 님비와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을 걷어내야 한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은 다소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국제사회와 협력해 간절히 도움을 원하는 이들에게 손길을 내미는 것이 당연하다.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고단한 처지는 남의 일이 아니며, 당연히 동병상련을 느낄 일이다. 세계와 함께 포용과 나눔을 실천하는 품위 있는 선진국은 대한민국이 지향할 미래다.

평화재단 hyeonan@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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