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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기술경쟁 속의 공급망 재구축과 한국의 대응

기사승인 2021.05.13  06: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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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58호

지난 40년의 미-중 경제협력과 기술경쟁

미국은 지난 2018년 7월부터 트럼프 미국정부의 관세와 환율 중심의 대중억제 정책을 시작으로 현재 중국과 기술, 정치, 외교, 안보, 금융, 체제 및 이념 전반에서 갈등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국제규범들이 와해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역사적인 큰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의 대 중국 인식의 가장 큰 특징은 중-미 관계를 ‘안보’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 시절부터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의 초점은 ‘글로벌 대테러 대응’에서 ‘주요 강대국 간의 전략적 경쟁에 대처’하는 것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이는 2018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위원회(NSC)에서 승인한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조정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상대적인 경쟁력 약세이다. 지난 1월부터 집권한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정부, 산업 및 지역사회가 다가오는 글로벌 경쟁에 대비하고 계속 쇠퇴하지 않도록 단결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대중 억제정책을 전략적 측면에서 이어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 강화를 통한 대중 전면포위전략이다. 미국의 글로벌 지배력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미국정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영역에 역점을 둬야 하는데, 미국의 글로벌 전략의 중심은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의 전략가들 사이에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에 대해 깊은 공감대를 갖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이 무한한 경제적 활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안보, 번영, 글로벌 위상 및 가치와 영향력 등 핵심 국익과 관계되는 가장 중요한 도전지역이라고 믿고 있다.

다만 대중억제의 구체적 추진에 있어서 바이든 행정부는 이전 트럼프 정부와 달리 미국의 전략적 신뢰성과 안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트럼프의 단순하고 무례한 방법을 대체하기 위해 동맹국에 더 많은 관심과 격려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동맹국이 더 많은 책임을 맡고 지역 리더십 역할을 하도록 우호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일본, 인도, 호주와 함께 국제안보를 주제로 정기적인 정상회담 체제를 구축하였는데 일명 쿼드(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체제이다. 쿼드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 전략의 일환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 창의로 대표되는 중국의 국제질서 도전을 견제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바이든의 민주국가간 기술동맹과 공급망 재편 전략

바이든 미국 정부의 대중국 견제전략 중 하나가 바로 첨단산업에서의 자국 기술경쟁력 강화와 중국 억제이다. 미래 4차산업기술 영역에서 가장 핵심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영역 특허수량에서 중국은 미국을 2배 넘게 앞서고 있다. 중국의 이런 기술굴기를 제어하기 위해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빼고 한국, 일본, 대만 등과 핵심부품 공급망 재편을 구상하고 있으며 중국에 많이 의존하는 희토류도 호주와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그 의존도를 줄이려고 하고 있다. EV 배터리분야에서도 LG, 파나소닉과 연계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미국을 대표로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조정은 단순 수급에서 출발한 개념이 아닌 안보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 주요국 정부는 ‘자급자족’이나 ‘기술 독립’ 또는 ‘통제 가능’이라는 개념으로 첨단 핵심산업 제조에서 공급망의 자국 내 구축에 노력하고 있다. 최근 중국과학기술일보가 중국의 35개 “목 조이는 기술”을 보도했는데, 그 중 리튬이온 배터리의 4대 핵심 소재 중 양음극재, 전해액 모두 이미 국산화를 실현했지만, 유독 프리미엄 분리막만 여전히 기술격차가 커, 현재 여전히 수입품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전고체 전지(Solid-state battery)는 전지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전해질을 기존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한 차세대 배터리다. 전고체전지는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통적인 리튬이온 전지 중의 전해액과 분리막을 대체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 등 종합적인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급 분리막 기술의 '목 졸림'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중국이 전략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로 꼽힌다.

하지만 전고체 배터리 분야의 최선두는 일본이다. 한때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의 최강자였다가 한국·중국에 밀린 일본이 차세대 배터리로 재탈환에 나선 것이다. 지난 2014~2018년 출원한 이 분야의 특허 5,629건 가운데 34%가 일본이며 2위가 중국(26%)이고, 미국·한국(14%)이 뒤를 쫓고 있다. 미-중 경제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중심에 둔 한·미·일 배터리 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비록 배터리 선도기업들은 모두 한국과 일본에서 먼저 나왔지만 중국 신에너지 자동차시장이 커지면서 중국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경쟁 대열에 가세해 왔다. 그 동안 미-중 양국의 신에너지 자동차시장은 국내시장 자체가 크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배터리 기업들은 자국의 시장에서 충분한 주문량을 얻을 수 있었고, 양국 신 에너지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중국과 미국의 배터리기업들은 빠르게 추격해왔다. 그러나 LG 화학이 유럽시장의 강세에 힘입어 급부상하면서 더 많은 배터리 기업들도 유럽시장의 잠재력을 발견했고 유럽 신에너지 자동차시장 잠재력에 대해 세계 배터리 업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유럽은 친환경규제를 가장 강하게 집행하고 있으며 2030년부터 탄소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55% 줄인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현재 유럽 신에너지 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중국의 CATL 등 주요 배터리 기업들이 유럽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배터리 선두 기업 모두 유럽시장에 대한 포석을 펼치고 있으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일정기간 배터리의 후반전이 유럽에서 펼쳐질 것이며 유럽에서 승패가 크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유럽과 미국의 동맹여부가 주목되는 이유이며, 유럽과 미국과 중국 양국사이에서 균형적인 외교전략으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배터리동맹과 한국의 전략: 도전과 기회

배터리 생산능력 자체만으로 미국과 중국의 역량을 비교하면 미국은 현저하게 부족하여 위기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전력공급을 위해서는 ESS(대규모 에너지 저장장치)가 필요한데 이 저장장치의 핵심이 배터리이다. 그러나 미국 내 배터리 생산능력은 2020년 말 기준 60GWh 수준에 불과하며, 반면 중국은 450GWh이며, 유럽연합은 170GWh에 이른다. 중국 CATL은 2025년까지 500GWh 증설을 목표로 대대적인 글로벌 배터리 설비투자에 들어갔다. 한국의 3사 투자계획을 합산해도 따라가지 못할 양이다. 500GWh 중 미국 내 투자는 당연히 단 한 건도 없다. 바이든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그린뉴딜’의 첫 시험대가 뜻밖에 반도체와 함께 배터리가 될 가능성이 크며 배터리가 없는 바이든의 그린뉴딜은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 결국 한국과 일본 및 유럽 등 동맹국과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며 배터리가 ‘뉴 OPEC’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미국 완성체업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온 LG 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국내 배터리업계에 미칠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한국에 의존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배터리 공급부족 현상은 세계 1위와 2위를 다투는 한국 기업들에게는 호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바이든 미국정부는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있어서 ‘안보’와 ‘독립’ 및 ‘통제 가능한’ 수준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자체 생산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OEM회사들이 배터리 생산을 인소싱하려고 공장을 짓고 준비하더라도 앞으로 수년의 시간이 걸리고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기에 이들은 가능한 GM처럼 배터리기술을 가진 회사와의 합작으로 공장을 설립해 초기 투자부담을 줄이고 시간을 줄이는 전략으로 갈 것이다. 결국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이 배터리 분야에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파워를 키워감에 있어서 미국과의 동맹은 큰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유럽시장에서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의 절대적인 지배적 지위를 확고히 해야 한다.

미-중 간에 충돌이 확산됨에 따라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은 한국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택일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과거 40년과 전혀 다른 미래 40년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거 40년 동안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세계화의 큰 흐름 속에서 각 국가들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자국의 우세산업을 내세워 서로 교역하면서 상대방으로부터 필요한 돈을 마음껏 벌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제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공급망 체제를 구축하려고 한다. 이런 역사적 변곡점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답은 우선 한국은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부터 정해야 할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라고 하는 세계 유례없는 패권싸움에서 미래 발전을 위해 정치로 접근할지 경제로 접근할지 정해야 할 것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정부나 기업 및 한국인 각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자세이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미국이 과연 정말 한국의 죽고 못사는 우방이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혹은 지정학적으로 볼 때 한국은 중국 경제가 커지고 잘 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주변동네가 잘 살아야 나도 잘 살 수 있는 도리와 같다. 과거 영국이 패권국가일 때 프랑스, 독일 등 주변국가 모두 강대국이었다. 동네가 잘 나가면 그 주변에 있는 나라들도 대충해도 잘 나가게 되어있다. RCEP 중심의 경제무역자유체제는 그 흐름을 훨씬 빠르게 할 것이다. 미국은 여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과거 오바마 정부 때 TPP를 내세웠고 지금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앞세워 주도권 경쟁을 중국과 벌여 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 경제주도권은 동아시아로 넘어오고 있으며 4차산업의 도래는 이런 흐름을 더 빨리 할 것이다. 한국은 미-중 양국에 치우치지 않고 자국 기술의 첨단화를 하루 빨리 실현해야 하는 것만이 가야 할 길이다. 자기 실력이 없이 남과의 관계로 자기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안유화는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중국 연변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2008년부터 한국자본시장연구원 국제금융실에서 중국담당 연구위원으로 7년간 근무하였다. 한국예탁결제연구원에서 3년간 객원연구원, 그리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성균관대학교 중국대학원에서 중국금융시장과 투자 과목을 담당하고 있으며, 한국 외교부와 대통령 직속 지식재산위원회 활용분과 전문위원으로 6년간 활동하였다. 법무법인 율촌 중국팀에서 고문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중 경제와 금융협력을 위해 정부와 국가연구기관 및 기업의 자문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안유화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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