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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정상회담과 우리의 공간, 우리의 선택

기사승인 2021.04.23  10: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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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255호

미·일정상회담, 신냉전의 개시?

2021년 세계사는 결국 신 냉전에 돌입하는가?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가 마주한 미·일 정상회담은 신냉전 도래의 징후인가? 그렇게 볼 근거가 없지 않다. 특히 한국에서 신냉전 개시를 기정사실화하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초반 대중 공세가 거세다. 맞장구치는 일본도 각오한 듯 보인다. 중국 또한 거칠게 맞받아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정면 격돌을 원하는 모습은 아니다. 애써 수위를 조절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미국이나 중국 모두 실제로는 양국 사이에 적대적 관계보다는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관계가 큰 몫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6일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첫 정상회담이었다. 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 <새 시대를 위한 미·일의 글로벌 파트너십>에서 두 정상은 강고한 미·일동맹에 입각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위한 협력을 확인했고, 중국 견제를 위해 남중국해와 타이완해협 문제를 언급했다. 또한 반도체 공급망과 5세대 네트워크 관련 미·일 협력을 포함해 안보, 경제, 기술 분야에 걸친 포괄적 협력을 약속했다. 이와 함께 공동의 안보와 번영에 한·미·일 3국 협력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협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교환재로서 타이완해협과 북한 비핵화 문제

특히 “타이완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함께,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하여 타이완 문제를 명시해서 언급한 부분과 “홍콩 및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공유”하며 중국에 대해 직접 우려를 전달해 나갈 것임을 확인한 부분이 주목되었다. 지난 3월 중순에 열린 미·일 외교-국방장관 회담(2+2)의 내용보다 더 나아간 표현이었다.

공동성명에서 타이완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1969년 사토-닉슨 회담 이래 52년만이며, 중·일 국교정상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 쪽에서 볼 때, 일본이 국교정상화 이래 타이완을 중국의 일부로 인정해 온 기존 입장을 번복하는 현상변경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랬기에 미·일의 공동성명에서 타이완 문제를 둘러싸고 미·일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고 조율이 난항을 겪었다. 미국이 강한 표현을 요구하며 커트 캠벨 인도태평양 조정관을 일본으로 보내 조율을 시도했지만, “양안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장려한다”는 표현을 덧붙이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이 부분은 타이완 문제를 둘러싼 미·일의 입장 차이가 드러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타이완 유사시에 일본이 중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일본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 일본이 의구심을 씻어내지 못하는 부분이다. 나아가 우리 못지않게 중국에 의존하는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타이완 문제는 일본에게 동맹 연루의 위험으로 다가가고 있다.

한편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도 화두였다. 여기에서는 일본이 양보한 결과가 되었다.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모든 대량파괴무기와 중·단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모든 탄도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CVID)’ 대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이라는 표현에 머무른 것이다. 이는 북한과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한·미·일 조율과 협력에 무게를 싣는 미국 측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 입장에서 동맹 연루의 위험이 감지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한계, 일본의 고민

기자회견에서 스가 총리가 공동성명에는 빠진 CVID를 굳이 언급하는 장면에서는 일본 측의 불만과 스가 총리의 외교 아마추어리즘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만찬을 하며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던 일본으로서는 햄버거 오찬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도 불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에서는 미·일동맹 강화를 환영하는 한편으로, 동맹 경사에 경고를 보내며 독자적 자주적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미·일동맹에만 경사되지 않는 독자적 대중 전략을 주문하는 마이니치신문 사설이나, 미국과 함께 대중 전략의 일각을 짊어지는 것만으로는 일본의 평화와 안전을 지킬 수 없으며, 스스로 주체적인 전략을 갖고 갈등을 제어하는 노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아사히신문 사설은 오히려 온건한 주장이다.

물론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인권 문제를 건드린 데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했다. 주미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담화를 발표하여, “미·일의 발언은 이미 양자관계의 정상적인 발전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 있으며, 제3자의 이익을 침해하고, 지역국의 상호이해와 신뢰를 침해하고,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을 침해하고 있다”며, ‘강력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를 표명했다. 주일 중국대사관도 같은 논조의 담화를 발표했고, 환구시보는 일본 외교가 미국을 거스르지 못하고 ‘반주권’ 국가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입장 표명은 직접 맞대응을 회피하면서 변죽만 울리는 데 그치고 있다.

타이완은 이번 미·일공동성명을 스스로의 외교적 성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은 기억도 있어서,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의식도 강하다. 그런 상황에서 보면, 타이완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중국의 위협에 대응한다는 일본의 전략은 한계가 분명하다. 강화되는 미·일동맹의 이면에서 영국 및 프랑스와의 관계 강화에 나서는 일본의 의도는 이러한 배경 아래에 이해되어야 한다.

 

다극화의 공간, 인도태평양

2021년 2월 3일, 제4차 영·일 외교-방위장관(2+2)의 영상 회담이 있었다. 공동성명에서 영국과 일본은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의 지배라는 핵심적 가치에 대한 기본적 관여를 공유하는 글로벌한 전략적 동반자이며, 유럽 및 아시아에서 가장 긴밀한 안보상의 동반자임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일본의 안보 전문가들은 1923년까지 유지된 영·일동맹이 100년 만에 부활한 것으로 환영했다. 영·일관계 강화는 영국의 아시아태평양으로의 회귀를 확인시켜 주면서 미·일동맹에 버금가는 일본 안보의 중심이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국은 올해 안에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를 인도·태평양에 파견할 계획이며, 일본은 이를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의 실현에 기여할 것으로 환영하고 있다.

지난 4월 5일부터 7일까지는 인도양 벵갈만에서 일본의 해상자위대와 미국, 호주, 인도, 프랑스의 해군이 공동훈련 ’La Perause 21’을 실시했다. 이 훈련은 2019년부터 실시해 오던 것이다. 일본과 프랑스는 그 해 1월, 5번째 외교-방위장관 회담(2+2)을 실시한 바 있다. 프랑스-일본 간의 ‘특별한 동반자’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한다는 방침이 천명되었다. 자유, 민주주의, 인권 존중, 법의 준수, 다자주의, 법에 기초한 국제질서 등의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및 번영을 위해 행동한다는 관여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다. 2020년 11월 프랑스 해군 피에르 방디에 참모총장은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쿼드와의 협력 강화와 공동훈련 의향을 밝힌 바 있다.

국내 언론은 이 모든 것을 중국 포위망의 형성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행위자의 증가와 미·일동맹의 상대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2일, 서훈 국가안보실장, 설리번 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국가안전보장국장 등이 한·미·일 안보실장 협의를 가졌다. 여기에서 설리번 안보보좌관이 한국의 쿼드 참가를 강력히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일본 요미우리신문을 통해 보도되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사 내용을 부인했다. 이 소동에서 보듯이 미·중 사이에서 여유 공간을 확보한 한국과 선택의 여지를 상실하고 초조해하는 일본의 차이가 드러난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의 실현이라는 목표에 대해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의 입장 조율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이 지역의 다른 국가들과의 입장 공유는 아직 시작단계에 머물러 있다. 모디 인도 대통령은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인도·태평양(a free, open, and inclusive Indo-Pacific)’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모리슨 호주 총리는 ‘개방적이고 포괄적이고 탄력있는 인도·태평양(an open, inclusive, and resilient Indo-Pacific)’의 실현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이 포괄적이고, 탄력있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는 것으로 이는 중국에 대한 배려가 묻어 있다.

 

확대되는 한국의 공간

한국의 입장도 유연하다. 정의용 외교장관은 지난 2월, “투명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이고, 또 국제규범을 준수한다면 어떤 지역협력체 또는 구상에도 적극 협력할 수 있다”고 우리의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2017년 11월, 김현철 당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편입될 필요가 없다”고 밝힌 입장에서 변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상황에서는 ‘인도·태평양’은 중국을 대상으로 포위망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의 의미가 강한 것이었으며, 이에 참가한다는 것은 쿼드 참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선택지였다.

역사에 가정은 금물이지만, 2017년 시점에서 미국 일본과 함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유하고 쿼드(4각형의 안보협의체)를 펜타곤(5각형의 안보협의체)으로 만들었다면, 신냉전은 벌써 개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인도·태평양 구상’으로 내려오고, 이제는 ‘구상’으로도 부르지 않을 정도의 지리적 개념에 불과한 용어가 되었다. ‘인도·태평양’이 현재의 느슨한 지역구상이 되어, 이에 대한 참여를 선택지의 하나로 고려할 수 있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선택하지 않은 선택’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을 통한 국익 실현’은 패전국 일본의 재상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국제사회 복귀 전략이었다. 요시다의 선택은 결국 동아시아 냉전의 한 요인이 되었고 한반도는 이에 말려들어갔다. 급기야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성립으로 동아시아 냉전이 확정되었다. 21세기 들어 일본은 다시 ‘미국을 통한 국익 실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2021년의 대한민국은 1951년의 한국이 아니다. 촛불혁명으로 재탄생한 대한민국은 ‘선택을 통한 주도’까지는 아니라도 ‘선택의 거부를 통한 공간 확보’까지는 가능한 국가가 되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환경의 전략적 변화는 우리가 선택하여 결정할 일이다. 오직 공정과 투명, 연대와 협력으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면서 원칙과 유연성을 조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평화재단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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