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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갱생으로는 북한 경제를 살릴 수 없다

기사승인 2021.02.21  20: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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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251호

갑자기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제8기 2차 회의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내부 결속을 다지는 대규모 정치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2019년 12월 말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대미관계 개선은 장기전이며 이 기간 동안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벌이자”는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이후 북한은 연속된 정치국 회의 및 중앙위원회 회의, 그리고 2021년 1월 8일 제8차 당대회에서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 2016년에 세웠던 국가경제개발 5개년 전략은 사실상 실패했음을 자인하고, 2021년부터는 자력갱생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새로이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경제문제에 집중하는 가운데 대남 및 대미관계를 포함하여 대외문제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비핵화와 경제제재 완화> 문제는 더 이상 협상의 대상이 아니며, <체제안전보장과 대화재개> 문제로 전환됐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남북관계도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과 전략자산 도입 중단을 대화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채 이렇다 할 변화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원칙적 입장과 함께 대중국 관계 강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북한은 대외관계보다는 내부 경제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2020년 10월을 전후해서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국경폐쇄를 강화하는 한편 대외무역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다. 이로 인해 수입에 의존하는 생필품의 시장가격은 폭등하고, 시장 거래는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책적으로는 경제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있지만 현실 경제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차 당대회가 끝난 지 불과 1개월여 만에 북한은 이례적으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2차 회의를 2021년 2월 8일부터 11일까지 진행했다. 이 회의에서는 다섯 가지 안건(①당 제8차 대회가 제시한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을 철저히 관철할 데 대하여, ②전사회적으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더욱 강도높이 벌릴 데 대하여, ③당중앙위원회 구호집을 수정함에 대하여, ④《조선로동당규약해설》 심의에 대하여, ⑤조직문제)을 다뤘지만 실질적으로는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5개년계획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첫해의 목표들을 점검해 본 결과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고 급하게 2차 회의를 개최한 듯하다. 회의 대부분 2021년 계획과 관련한 강한 비판과 질타로 이어졌다.

향후 북한의 전략 방향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났다. 즉 “자력갱생의 능력을 강화하여 정면돌파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그러니 지난 1년간 김정은 위원장이 각종 회의와 현지지도를 통해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각 기관이나 주민들은 여전히 이를 따라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19년 12월말 회의와 유사하게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자들을 집중 질타하며 사실상 2021년 인민경제계획을 다시 세우라는 지시를 했다. 당 경제비서 및 부장은 불과 1개월만에 오수용 제2경제위원장으로 교체됐다. 조용원 조직비서가 김두일 당 경제비서 겸 부장을 세워놓고 비판하는 사진이 공개되기까지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번째 안건인 ‘전사회적으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더욱 강도높이 벌릴 데 대하여’를 채택했다. 5개년계획의 목표를 법령으로 채택하여 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지울 것임을 분명히 했다. 당의 경제 관련 지도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당 기관 자체들의 일탈을 관리 통제하기 위해 조직지도부에서 분리 독립한 당 검사위원회의 하부 조직을 강화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검찰기능을 강화했다. 또한 관성적으로 예년에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세도주의, 기관 본위주의 등을 척결할 것임도 강조했다.

 

현실과 목표의 괴리를 보인 5개년계획

북한이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이 제시한 5개년계획의 윤곽을 보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중심과업은 금속공업과 화학공업을 경제발전의 관건적 고리로 틀어쥐고 기간공업부문들 사이의 유기적 련계를 강화하여 실제적인 경제활성화를 추동하며 농업부문의 물질기술적 토대를 향상시키고 경공업부문에서 원료의 국산화 비중을 높여 인민생활을 한 계단 올려 세우는 것입니다.”

금속공업과 화학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켜 이를 기반으로 다른 부문들을 동반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1960년대의 중화학공업 우선정책, 즉 중화학공업을 우선하는 불균형 발전전략의 변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당시 북한은 중화학공업 우선정책을 통한 불균형 발전전략과 균형발전전략을 놓고 많은 토론이 있었으며 결국 자력갱생을 기반으로 한 불균형 발전전략을 채택했다. 북한이 풍부하게 보유한 광물자원(철, 석탄 등)을 기반으로 중화학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 자연스럽게 경공업 및 농업 등은 발전하게 된다는 논리다.

이번 5개년계획은 당시의 중화학공업 우선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전히 풍부하게 매장된 철과 석탄을 이용하여 금속공업과 화학공업을 우선 발전시키면 농업과 경공업 부문도 발전한다는 논리를 재연한 것이다.

그런데 전략 방향만 1960년대의 사고를 도입했을 뿐 현실은 당시와 전혀 달라졌다는 점을 간과한 듯하다. 당시에는 전기가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광석을 채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급격하게 팽창하는 경제규모에 맞춘 설비 확대가 필요했다. 북한은 60년대 후반부터 외자를 도입하여 설비 확대를 도모했다. 외자의 상환은 지하자원을 수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인해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북한은 외자를 상환할 수 없게 됨으로써 외자도입의 길이 막히게 됐다.

현재 북한은 전력부족으로 철광석 생산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도 지적했듯이 현장에서는 전기 공급을 원하는데 전력생산 부문에서는 계획목표를 낮게 잡고 연말에 추가 생산해서 칭찬을 받으려는 얕은 술수를 쓴다고 했다. 전력부족의 현실을 자인한 것이다. 더욱이 금속산업의 설비 정상화를 과학기술로 보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1970년대 설비 도입에 실패한 이후 북한의 대규모 공장들은 거의 대부분 ‘땜질식 공정’을 만들어냄에 따라 설비의 생산성이 극도로 낮아졌음은 물론 사실상 가동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광산에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철광석 생산성도 낮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 아무리 과학기술을 접목시킨다 해도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북한의 각 기관이나 주민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강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그나마 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서 목표를 내세운 것인데 하나도 바뀌지 않고 창의적 아이디어도 없다고 다그치고 있는 셈이다.

화학공업부문도 다를 바 없다. 북한의 화학산업은 석탄 중심이다. 이 역시 1960년대 비날론 기술을 중심으로 자력갱생의 화학산업을 형성한 데 기인한다. 당시에는 석탄 중심에서 석유 중심으로 세계 화학산업의 중심축이 옮겨가고 있었지만, 석유가 없는 북한은 자력갱생을 위해 석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비날론을 개발한 북한의 화학자 리승기 박사의 업적을 내세워 석탄화학을 만들기는 했지만 실용성 측면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비료 역시 석탄화학에서 공급하는 구조다. 북한이 획기적 변화를 원한다면 석유화학으로 전환하는 것이 답인데 ‘탄소하나 화학산업’을 내세우고 있다. 비록 미래지향적인 산업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기술개발이 초보적인 단계일 뿐 아니라 화학산업 분야에 표준화도 안 된 상태다. 이를 북한이라는 소규모 시장에서 주축 산업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시점에서 탄소하나 화학산업은 제2의 비날론일 수밖에 없다.

2010년 이후 북한의 석탄 수출이 급증했는데, 이는 2000년대 초중반 이후 중국자본이 북한 석탄광에 투자했던 결과다. 석탄광의 투자는 기본적으로 채탄설비와 전력공급을 위한 발전기 공급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발전기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기름이 필요하며 중국자본은 기름공급도 보장했다. 그런데 현재는 경제제재 등의 이유로 중국자본은 상당수 철수한 상태다. 석탄생산이 제재 이전 단계만큼 원활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경제발전의 관건적 고리라고 강조한 금속 및 화학 산업을 자력갱생 기조로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기공급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북한의 전기생산은 수력과 화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력은 대부분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한다. 강도 많고 석탄도 많으니까 맘만 먹으면 전기 생산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핵심적인 문제는 시간과 기술이다. 전기는 당장 필요한데 발전소 건설은 10년 이상 소요된다. 기존 발전소를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개보수하면 되겠지만 핵심기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석탄 화력을 높이기 위해 석유를 분사해 주는 노즐기술 등은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99%를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도 1%가 없으면 가동될 수 없다.

2020년 8월19일 당 중앙위 제7기 6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에게는 현실을 무시한 목표나 계획이 필요없습니다. 우리가 혁명과 건설을 달이나 화성에 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는 만큼 우리가 처한 주객관적 조건을 구체적으로 반영하여 목표도 설정하고 계획도 세워야 합니다”라고 언급했다. 북한 주민들은 다른 무엇보다 이 내용에 주목했다. 오히려 중간 관료들이 비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하면 김정은 위원장의 말을 언급하며 현실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온 것이 아마도 이번 2021년 인민경제계획일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당의 목표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여 종래와 같은 계획을 세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아마도 북한 주민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울 것이다.

5개년계획은 금속과 화학산업을 발전시키면 농업과 경공업도 따라서 발전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2012년 이후 북한에서 가장 성과를 보인 분야는 다름 아닌 농업과 경공업 분야다. 북한 주민들은 최악의 식량난에서 벗어났고, 북한산 경공업 제품들을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김정은 정권이 실시한 분조관리제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민들은 자기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면서 수확고의 평균 70%를 자체적으로 처분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텃밭보다는 협동농장의 자기 땅에 더 신경을 쓰게 됐고, 생산성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시장에서는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식량을 구할 수 있게 됐다. 기업소나 기관들은 자체 생산능력의 30% 정도인 국가계획량만 채우면 나머지 70%를 가지고 소속원들의 생활비 및 식량 등을 자체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역시 생산성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농업이나 경공업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대외무역’이다.

농업 부문에서는 종자와 각종 농기구를 무역을 통해 조달했다. 협동농장은 시장의 돈주나 해외대표부 인원들과 연계하여 농업에 필요한 농자재를 조달하고 시장에서 원금을 회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경공업 부문에서는 원재료 및 생산설비를 같은 방식으로 해외에서 조달해 왔다.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식량 및 경공업 제품 부족이 심화되지 않았던 이유는 이러한 대외무역에서 비공식 무역(밀수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비공식 무역 비중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권력기관과의 상납관계가 형성된다. 권력기관에 있는 사람들은 직접 시장에서 돈벌이를 하는 대신에 각종 이권의 뒤를 봐주고 현금을 챙겨왔다. 북한의 세도 정치는 바로 이러한 이권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각 조직에서 돈이 되는 자리는 대부분 세도가의 사람들이나 이에 연결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형성된 북한경제의 순환구조에 힘을 더해준 것이 포전담당제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공식 도입이다. 그런데 2020년 하반기부터 북한 내부에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농업과 경공업 부문을 포함하여 북한 경제의 전 부문에서 당의 비상설경제관리위원회, 내각 및 국가계획위원회, 그리고 각 담당부처가 계획을 짜고 생산과 유통단위들을 관리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는 포전담당제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가 상대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시장의 힘’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며, 1960년대로 회귀한 조치다. 농업과 경공업 분야는 외부와의 연계 속에서 발전해 왔는데, 자력갱생을 내세우고 금속 및 화학공업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전한다는 과거의 논리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인민대중제일주의’는 대외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문제 해결로 실현된다

이렇듯 북한은 새로운 길로 1960년대식 대응을 채택했다. 그런데 북한사회는 1960년대식 경제정책에 실패하면서 50여년 가까이 생존형 경제구조가 형성되어 왔다. 하노이 회담 이전까지 김정은 위원장은 대외관계 개선을 통해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경제구조를 활성화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에 실패하자 다시 과거로 회귀를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불안정성이 우려된다. 북한 주민들은 오로지 돈벌이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의 관리와 계획기능이 강화되고, 뇌물 및 상납구조를 억제하기 시작하면 시장기능은 약화된다. 시장이 약화되면 북한 주민들은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물론 계획기능이 정상화되면 굳이 돈벌이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자력갱생을 통한 계획기능의 정상화는 현 시점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실적 판단이다.

북한 주민들은 당장 코로나19로 인한 통제 때문에 생활고를 참을 수밖에 없으며, 그동안 비축해 놓은 것으로 버티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이 적어도 1년 이상 지속되고 이후에도 통제와 관리가 지속될 경우 주민들의 생활고는 인내의 한계에 달할 수 있다. 북한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대외관계 및 대남관계 개선을 통해 5개년계획의 성과를 이끌어 냄으로써 비로소 ‘인민대중제일주의’는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조속히 대남 및 대미 대화테이블로 복귀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북한 주민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평화재단 hyeonan@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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