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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대 한미관계: 누가 누구를 예인할 것인가?

기사승인 2021.01.27  13: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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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53호

지정학의 귀환, 한국의 동맹비용

지난 1월 4일에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인근 해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의 화학운반선을 나포했다. 일주일 만인 10일에 아락치 이란 외무차관은 “한국의 은행들이 미국 제재를 두려워해 불법적으로 이란 자금 자원(접근)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은행에서 동결시킨 70억 달러를 코로나19 백신 구매자금으로 활용하려는 이란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한 한국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년 전에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드론으로 암살하였고, 가혹하게 이란에 경제제재를 가해왔다. 이에 대해 이란은 미국에 직접 보복하지 않고 그 대신 미국의 뒤를 따라가는 한국을 보복 상대로 설정한 셈이다.

이 사건은 한국에게는 동맹의 딜레마를 일깨우는 단면이다. 미국의 입장을 존중하는 한국 정부가 미국과 이란의 전략적 갈등에 끼어들게 되면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점, 그것이 바로 딜레마다. 어쩌면 이란의 선박 나포는 동맹의 적은 비용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맥락에서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에 한국이 끼어들게 될 경우 그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 미국에 직접 보복할 수 없는 중국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보복의 상대로 정하게 된다. 2016년에 미국의 사드 요격미사일이 한국에 배치되자 한국과 중국의 외교관계는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관광산업과 문화교류에도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이후 한때 중국에 무역의존도가 큰 한국의 대중 무역흑자가 36% 감소하기도 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못한 중국 정부는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가혹했다.

최근까지도 해리 해리스(Harry Binkley Harris, Jr)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이 중국의 통신업체인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첨단기술과 미래 산업 영역에서 한국을 중국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분리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여진다. 동아시아에서 공급망을 재편하여 중국을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은 최근 바이든 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으로 내정된 커트 캠벨(Kurt M. Campbell) 인도태평양조정관의 포린어페어즈(foreign affairs) 기고문에서도 다시 강조되고 있다. 이 기고문에서 캠벨은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으로부터 공급망을 옮기는 것이 (중국 밖의 아시아에서) 새로운 성장기회를 창출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안심해도 될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진실인가?

장기적으로는 한국도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감소하는 추세다. 그러나 전경련에 따르면 코로나19에 직면한 2020년 상반기에 한국의 대중국 수출비중은 24.3%에서 25.8%로 오히려 증가했고,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서 유독 중국만이 금액(184.4% 증가)과 비중(8,2%p 증가)이 증가했다. 한국에게는 전염병에 대처하지 못해 경제가 폭락하는 미국과 서방의 시장이 매력적인가, 아니면 그나마 코로나를 극복하고 정상화된 중국 시장이 매력적이겠는가. 세계 경제의 위기에서 중국 시장이 그나마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하고 중국으로부터의 분리(decoupling)를 말한다는 것은 적어도 지금은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그 위험한 사고를 바탕으로 중국으로부터 함부로 분리를 시도하게 되면 중국에 투자한 자산은 ‘좌초자산(stranded asset)’으로 전락하게 된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원칙에 역행하는 자해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세력 균형 정책이 자율적인 시장경제 원리를 침해하게 되면 당연히 한국의 경제는 위협받게 된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할 때 한국에 양자택일의 압박을 가한 당사자 중 한 명이 바로 부통령 시절의 바이든이다. 2013년에 부통령이던 그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확실하게 미국 편을 들 것을 요구했다. 직후 연세대 강연에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는 트럼프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마저 트럼프가 표방한 중국 견제 대전략, 즉 인도·태평양 전략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게 했다. 작년 11월에 대선에서 승리한 바이든 당선자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한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linchpin)”이라며 7년 전 주장을 다시 상기시켰다. 중국 견제라 하더라도 트럼프가 늑대처럼 물어뜯는 거친 방식을 구사했다면 바이든은 여우처럼 술수와 책략으로 유연한 방식을 구사한다는 점만 다른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의 재앙, 극복될 것인가 연장될 것인가?

중국에 대한 포위와 견제라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한미 군사동맹에도 불확실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전시작전권을 미국으로부터 전환한다는 한미 간의 공감대는 무너진 상황이다. 전작권 전환은 2006년에 한미 간에 합의된 사안이고 순조롭게 그 준비가 이루어졌다. 2007년에 주한미군사령관 버웰 벨(B. B. Bell)은 한국군이 작전권 행사를 위해 충분히 준비했으며,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훌륭하다”고 극찬하였다. 그런데 14년이 지난 지금은 펜타곤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전작권 전환에 소극적이다. 예전에 충족된 조건이 지금은 충족되지 않았다는 입장 변경의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작권 전환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부응해야 한다는 미국의 새로운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환과정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전환은 불가능해 졌다.

한국 정부의 자율성을 제고하는 조치는 지연된 반면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협력 기구에 참여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기고문에서 캠벨은 “중국의 모험주의를 억제하기 위해 동맹국 및 파트너와 협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이 주도하고 인도, 호주, 일본이 참여하는 4자 안보 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Quad)에 뉴질랜드와 함께 참여할 것을 미국으로부터 요구받고 있다. 미국은 기존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양자동맹을 범지역적 차원의 다자동맹으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한미관계는 그 자체로서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삼각관계, 또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집단안보라는 영역으로 그 개념이 확장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 국민들이 중국의 위협을 과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최근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한반도 인근에서 전략적 기동을 부쩍 늘린 것은 사실이다. 특히 재작년 7월에 중국의 전략폭격기와 함께 출동한 러시아의 조기경보기가 한국의 독도 영공을 침범하자 한국 전투기가 실탄으로 경고사격을 하여 퇴거시킨 사건도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 국민들은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과 같은 수준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에도 위협을 느낀다. 재작년 여름의 영공침범 사건 당시 인근에는 일본 자위대 전투기 역시 초계비행을 하고 있었다. 독도 인근의 좁은 공역에 한국, 일본, 러시아, 중국 군용기 40대가 뒤엉켜 있어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상한 군사대치 양상이 나타났다. 이 사건 직후에 일본 정부는 우리가 러시아 군용기를 퇴각시킨 조치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독도는 일본 영토이기 때문에 한국의 권한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건 직후 같은 해역에서 한국의 구축함과 일본의 초계기가 대치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후 한일 간의 군사협력은 이상에 불과하다는 점,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은 한국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만한 주제가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게다가 올해 1월에 한국 법원은 전쟁 당시 위안부에 대해 일본 정부더러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권위주의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신봉하는 동아시아 국가들끼리의 연합과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시민혁명을 경험한 한국의 민주주의와 70년 자민당 일당 지배의 바탕 위에서 역사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일본 민주주의가 같은 민주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중국이 일당 권위주의 체제라서 견제해야 한다면 베트남의 일당 지배는 권위주의가 아닌가? 미국은 이미 베트남과 군사협력까지 진행하고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최근 민주주의가 가장 심각하게 무너진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면 어느 나라인가? 이란과 다자간 맺어진 비핵화 합의를 깬 평화의 도발자는 미국 아니었는가? 그러니 인권과 민주주의가 과연 동아시아에서 진영을 가르는 기준으로 적합한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외치며 한국 정부에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첨단무기 구매를 요구했다. 트럼프는 원래 취임 초부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파기하려고 했지만 백악관과 정부 관리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 의회는 트럼프가 한국과 동맹을 파기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트럼프 임기 중간에 국방수권법(Defense Authority Act)에서 주한미군 병력을 2만8500명 이하로 감축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 법은 최근 퇴임 직전의 해외 미군을 감축시키려는 트럼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의회와 갈등을 겪는 주요 요인이었다. 작년 10월 14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마크 에스퍼(Mark T. Esper) 미 국방장관은 “주한미군의 현 수준 유지”를 약속하는 공동선언을 요구하는 한국의 서욱 국방장관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동맹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임기 중에는 미국의 리더십이 약화되는 수준을 넘어 실종되는 단계로 나아갔다.

 

지정학을 넘어 지경학적 도전과 과제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의 일방주의를 개선하겠다면 한미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켐벨 스스로도 말했듯이 “아시아에는 두 개의 아시아가 있다.” 첫 번째는 정치·안보 측면에서의 갈등의 아시아이고 두 번째는 경제적으로 상호의존 관계에 있는 협력 차원의 아시아다. 아마도 전자가 전통적인 지정학의 아시아라면 후자는 복합 지정학, 또는 지경학(geoeconomics)의 아시아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핵 능력이 성숙하여 이제는 강대국 지위를 넘보고 있다는 사실도 우려하며, 몸집이 커진 중국이 지정학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지역 강국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또한 그들의 모험주의는 한미동맹과 우방과의 협력을 통해 억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단면에 불과한 것이고 아시아는 강대국 정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공간’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미국은 ‘언덕 위의 빛나는 교회’로서 선한 패권국, 중국은 현상을 변경하려는 위험한 도전국이라는 구도는 현실을 지나치게 지정학적 갈등으로 단순화한다. 그것이 바로 팬데믹의 재앙을 더욱 확대했다. 미국과 중국은 팬데믹에 대한 책임 떠넘기기 공방을 벌였다. 인류의 공공재가 되어야 할 백신을 국가 이익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다국적 제약업체들은 비공개로 백신을 거래하였고 국제 보건기구들은 무력화되었다. 미국 스스로가 범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다자주의를 민족주의에 희생시켰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과의 대결에 앞서 퇴행으로 가고 있는 국제질서를 협력적인 방향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미국의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한국은 방역에 성공한 노하우를 전 세계와 공유하는 중견 국가(Middle Power),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경제를 건실하게 유지한 자유통상국가, 지정학적 갈등을 완화하는 평화 선도국가로서 자신을 재발견해야 한다.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공동의 번영을 도모할 수 있는 협력의 규칙까지도 선제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역량 있는 국가여야 한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해법을 제공하는 터전이다.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형편없이 후퇴하였다. 한국은 세계의 리더십이 사라진 상황에서 호주, 독일, 일본 등의 중견국가들에게 협력의 ‘제3의 지대’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투명한 정보공개와 범지구적인 재난에 대한 공동대응,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규칙 기반의(rule based) 국제질서를 지향하는 명확한 국가 비전을 정치와 외교의 중심으로 정립하는 것이다. 미국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고장 난 미국을 안전한 항구로 이끌 수 있는 예인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미관계에서 한국의 주도성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도 관철되어야 한다. 한국은 한반도 평화의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역량이다. 한미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중견 평화국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볼 일이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소개

김종대는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이다.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정의당 비례대표, 국회국방위 소속)을 지냈다. 월간 <디펜스21+>의 전 발행인 겸 편집인을 지냈고, 대한민국 14대, 15대, 16대 국회 국방위 보좌관을 역임하였으며, 16대 대통령직인수위 국방전문위원, 대통령비서실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무총리비상기획위 혁신기획관,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거쳤다.

김종대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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