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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제8차 당 대회와 ‘조건부 관계개선론’

기사승인 2021.01.13  11: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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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248호

위기 속에 치러진 북한 제8차 당 대회

2020년 1월 5일 개막된 북한 노동당 제8차 대회는 7일까지 이어진 김정은 위원장의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 이어 9일 당규약 개정, 10일 당중앙지도기관 선거 진행, 11일 부문별 협의회에 들어갔다. 총화보고와 노동당 8기 중앙위원회의 새로운 구성,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당 총비서 추대결정으로 대회는 사실상 마무리 수순을 밟았다.

2016년 5월 치러진 제7차 당 대회에서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명실상부한 자신의 시대를 개막했다. 제7차 당 대회에서 김 위원장은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항구적 노선으로 천명하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공표했다. 반면 이번 제8차 대회는 대북제재, 코로나19 사태, 그리고 수해 등 복합적인 위기상황에서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995년 1월 1일 김정일 위원장에 이어 26년 만인 올해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 역시 인민들에게 친필 연하장을 보냈다. 김정일, 김정은 위원장의 친필 연하장의 공통점은 모두 위기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친필 연하장을 보낸 시점은 북한 정권 스스로 최대의 위기라고 인정한 고난의 행군기였으며, 김정은 위원장의 경우도 당 대회를 앞두고 중복성을 고려하여 신년사를 대신한 탓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여하튼 3중고로 고난의 행군기에 버금가는 위기를 겪고 있는 시점이다.

2020년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은 전성기의 1/4 수준에 그쳤으며, 경제분야 활동 역시 최저 수준이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2020년 11월 북한의 실질 대중 수출액은 2,382달러에 불과하며, 이는 북한 경제의 절박한 현실을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일 뿐이다.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도 당 대회 개회사에서 ‘일찌기 있어본 적 없는 최악중의 최악으로 계속된 난국’이 커다란 장애를 몰아왔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제8차 당 대회로 본 북한의 전략

제8차 당 대회 개최의 의미를 두고 김 위원장은 “도전은 외부에도, 내부에도 의연히 존재하고 있다”며 “다시는 폐단이 반복되지 않게 단호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당 대회가 당 강화발전과 사회주의 위업 수행에서, 국력 강화와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에서 획기적인 도약을 일으키는 디딤점이 되고 역사적 이정표가 될 것을 확신한다”고 언급했다.

막 당일인 1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이어진 김 위원장의 총화보고는 “1.총결기간 이룩된 성과, 2.사회주의 건설의 획기적 전진을 위하여, 3.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대외관계 발전을 위하여, 4.당사업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등 4개 분야로 구성되었다. 제7차 당 대회는 대남, 대외가 별도의 분야로 다루어진데 비해 이번의 경우 1개 분야로 통합되었다.

김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결함의 원인을 객관이 아니라 주관에서 찾고 주체의 역할을 높여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원칙”을 강조했다. 이는 북한이 처한 문제의 원인을 대북제재를 초래한 핵·경제 병진노선의 정책적 한계라는 객관적 요인이 아닌 북한 내부에서 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노선을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비사회주의, 반사회주의적 현상을 쓸어버리고 온 나라에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철저히 확립”하겠다며 변화보다는 기존 사회주의 체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내보였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방향의 경우 기존의 자력갱생형 정면돌파전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기본종자, 주제는 여전히 자력갱생, 자급자족”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 국가경제는 자립경제이고 계획경제이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경제”라며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를 실현하기 위한 기강을 바로세우고 국가적인 일원화 통계체계를 강화할 것”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의 진전도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분야의 성과가 미진한 상태에서 김 위원장은 국방분야의 성과를 강조했지만 대체로 이미 공개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다탄두 탄도미사일, 핵잠수함, 인공위성 등을 언급했지만 단기간에 실현이 어려운 계획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김 위원장이 “새로운 핵잠수함설계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단계”에 있다고 언급한 것은 무기 개발의 초기 단계인 개념 연구를 의미하며, 북한이 소수의 핵선진국들만 보유한 핵추진 잠수함의 건조 기술을 확보할 가능성은 미지수다. 또한 “다탄두개별유도기술을 더욱 완성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마감단계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언급에 비추어 그 동안 북한이 공개한 다탄두형 탄도미사일은 실전배치용이 아닌 목업(mockup)이라는 점도 간접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북한이 이렇게 다양한 종류와 수준의 무기들을 나열하고 핵무기 증강계획을 언급한 것은 우리의 군사력 강화와 한미 연합훈련을 견제하고 향후 북미 협상을 핵군축 프레임으로 가져가려는 정지작업으로 보인다.

 

상대측에 공을 넘긴 대미·대남정책

남북관계와 대외관계 분야의 경우 기존의 교착 국면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측의 움직임에 따라 협력의 소지를 남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총화보고에서 남북관계 교착의 원인을 남측으로 돌리며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파국에 처한 현 북남관계를 수습하고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해나가야 한다”며, “북남선언들을 무겁게 대하고 성실히 리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남조선당국의 태도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온 겨레의 념원대로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에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북한 측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겠지만 계기가 만들어질 경우 근시일내에 남북관계가 복원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에 대해서도 강경한 태도를 견지한 것으로 보기 힘들며 오히려 협상의 소지를 남겨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제7차 당 대회에 비해서 전반적으로 미국에 대한 언급과 공격적 언사가 축소되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철회하는데 있다”며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는 2020년 7월 10일 김여정 제1부부장의 대미 담화에서 이미 천명된 것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따라 대응 수위를 결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당 조직 개편의 내용과 특징

이번 당 대회에서 개정된 당규약을 통해 노동당 정무국이 비서국으로 환원되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총비서로 추대되었다. 그림자 실세 조용원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정치국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상무위원에 진입했으며, 당비서, 그리고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까지 겸직하게 되었다. 경제사령탑인 박봉주의 경우 당부위원장과 상무위원직을 모두 상실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도 당중앙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되었는데, 북·미 비핵화 협상 실패의 책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위상 강화가 예측되었던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탈락했다. 그 동안 김 제1부부장이 주도했던 대남, 대미 관계에서의 성과부재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 제1부부장의 실질적 위상이 약화된 것으로 보기는 이르다. 당 대회에서 처음으로 39인 집행부에 20번째로 이름을 올렸으며, 대회기간 내내 주석단 김정은 위원장 뒷줄에 조용원과 함께 앉아 있었다. 향후에도 김여정이 대남, 대미 관계 전반을 관장할 가능성이 있다.

김영철은 통일전선부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비서직에서는 제외되었다. 김영철은 원래 남북관계에 특화된 인물로 오히려 통일전선부의 위상이 강화된다는 점에서 향후 대남정책이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리선권 외무상은 자리를 지켰지만 정치국 후보위원 중 맨 마지막에 호명되었다. 김영철과 리선권은 김여정의 지휘 하에 대남 대미관계를 전담하게 될 개연성이 있다.

 

다시 보는 김정일 레거시(legacy)

수십만 명 이상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기 이후 김정일 위원장이 선택한 돌파구는 남북관계였다. 고난의 행군기 마지막 해인 19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소떼를 몰고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금강산관광 사업에 관한 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체결했다. 정주영 회장의 방북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을 비롯한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는 상징적 계기였다. 이어진 2000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 개선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으며, 이는 2007년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북한 군부의 반대를 물리치고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개성공단사업을 결정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금강산관광사업 10여 년간 193만여 명이 해로와 육로를 통해 금강산을 관광했으며, 이로 인한 수익은 북한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북한의 김덕훈 총리는 지난해 12월 금강산을 방문해 개발계획을 재차 확인했으며, 8차 당 대회 보고에서 김정은 위원장도 “금강산지구를 우리 식의 현대적인 문화관광지로 전변시켜야 한다”며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을 조건 없이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100%가 남측이며, 금강산 관광객 역시 대부분 남측이다. 남북 협력 없이 북한 경제의 미래를 보장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많은 탈북민들이 남북관계의 전성기였던 2000년 이후 10여 년간을 북한 경제가 상대적으로 좋았던 시기로 회상하고 있다. 제7차 당 대회 당시 4.25 문화회관 대회장 벽에 걸려있던 ‘백전백승’ 구호는 이번 제8차 당 대회에서 인민을 강조하는 ‘이민위천(以民爲天)’으로 바뀌었다. 선대인 김정일 위원장은 진정한 이민위천의 길은 남북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실천에 옮기는 유산을 남겼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골든타임

퇴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남긴 성과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비핵화 협상은 화려한 탑다운(top-down) 방식이었지만 실질적인 성과도출에는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정상간 채널이 확보되었으며, 2017년 전쟁위기에 직면했던 한반도 상황도 안정적으로 관리되었다.

이미 트럼프 레거시가 있다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은 역설적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후보 시절 TV토론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핵이 없는 한반도를 위하여 그(김정은)가 핵능력을 축소하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빅딜을 추구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스몰딜의 수준에서도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현재까지 바이든 당선인과 주변 참모들의 언급을 종합해 볼 경우 바이든 행정부는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이 있을 경우 스몰딜의 합의가 가능하며, 각 단계별 스몰딜을 통해 최종적인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바이든 당선자와 주요 외교안보라인이 이란 핵합의를 도출한 인물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행동 대 행동 원칙의 스몰딜을 북한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국내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일본의 스가 총리는 금년 도쿄 하계올림픽의 성사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할 경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시작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데자뷔가 될 수 있다.이 경우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북한의 도쿄올림픽 참가를 위해서는 한국과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남북‧중‧일이 협력구도를 형성할 경우 2032년 남북 공동올림픽 개최 구상도 본격화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동아시아 평화 릴레이 올림픽 전략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로 접어든다는 점에서 금년 상반기가 골든타임이다. 북·미 비핵화협상을 견인하고 동아시아 평화 릴레이 올림픽 전략의 구체화를 위한 코리아 이니셔티브(Korea Initiative)가 필요하다. 출발점은 남북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북한이 8차 당 대회에서 남북관계 타개에 손을 내민 만큼 대북 특사는 물론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남북대화를 복원하고 금년 상반기 내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한 ‘봄날’로 되돌아가야 한다.

특히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합동군사연습과 남북관계를 조율하는 일이 시급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확립을 기다릴 일이 아니라 북한의 협력의사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끌어내는 창의적 발상이 중요하다.

평화재단 inst1@pf.or.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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