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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영국 드디어 EU에서 나가다

기사승인 2021.01.07  1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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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LOFO 칼럼 2021 한반도 정세전망 시리즈②

2020년 12월 말일, 영국이 EU와 공식적으로 결별한다는 기사들이 실렸다. ‘브렉시트(Brexit)라는 말을 들은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나가지?’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2016년 EU 탈퇴를 결정한 국민투표 후 영국은 EU와의 오랜 협상을 거쳐 2018년 말에 탈퇴협정에 합의했다. 이때 영국이 지급해야 할 정산금, EU와 영국에 거주 중인 상대방 국민의 법적 지위 등이 정해졌으나 중요한 통상관계가 합의되지 않았다. 따라서 2020년 1월 31일 탈퇴는 하되 연말까지의 전환기간을 설정하고 EU와의 관계를 유지한 채 ‘미래관계협상’을 벌여왔다. No-Deal Brexit의 우려도 있었으나, 전환기간 종료 불과 일주일 전인 12월 24일 무관세·무쿼터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주 내용으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EU란 무엇인가?

EU는 27개 회원국, 인구 4.8억 명, 미국에 이은 경제규모를 지니고 있다. 이 중 19개국 3억 명이 단일통화 유로화를 사용한다. 지역통합, 초국가적 기구의 경험이 없는 우리가 EU의 구조와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전후 유럽의 통합은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시작으로 1967년 유럽공동체(EC), 1993년 유럽연합(EU)으로 발전했다. 회원국은 6개국에서 28개국(영국 포함)으로 늘었고, 자유무역지대, 관세동맹, 단일시장으로 경제통합이 진전되었다. 관세동맹에서는 비회원국에 대해 공동 대외관세가 부과된다. 개별국가가 아닌 한·EU간 FTA가 체결된 것은 이 때문이다. 단일시장을 통해 상품, 서비스, 자본은 물론, 노동(일자리)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쉥겐조약 체결로 조약국간 이동시에는 여권 검사가 폐지되었다. 우리도 쉥겐지역에서는 한 국가처럼 이동할 수가 있다.

1979년 시작된 환율조정제도(ERM)로 회원국간 환율변동 폭이 제한되었다. 1999년에는 유로화가 도입되었다. 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재정규율이 강화되고 은행동맹도 진전되고 있다. EU는 경제동맹에서 출발해 기후, 환경, 건강, 대외관계, 안보, 이민 정책 등을 아우르는 조직으로 발전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EU는 유럽의회, 각국 정상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 각국 장관들의 회의체인 각료이사회, 정책입안 및 집행을 담당하는 유럽집행위원회와 유럽사법재판소 등을 통해 초국가적인 입법, 사법, 행정 기능을 수행한다. EU의 법규는 규정, 지침, 권고, 의견 등으로 나뉘는데, 규정(regulation)은 회원국 국내법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 전환기간 동안 영국은 EU 기구에서 철수했지만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잔류했고 EU 법의 적용을 받았다. 전환기간을 끝내면서 존슨 총리가 이제 “우리의 법과 운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EU에서 영국은?

영국은 EU 내 인구와 경제규모면에서 독일에 이어 프랑스와 2위를 다투는 위치였다. 하지만 통합의 가장 상징적인 쉥겐조약과 유로지역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러 면에서 EU와 부딪혔다. EC에는 1967년 가입신청을 했으나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그가 물러난 후인 1973년에야 가입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가입조건 재협상과 1975년의 잔류 여부 국민투표 등 곡절을 겪었다. ERM에는 1990년 10월에야 합류했는데 1992년 9월, 파운드화 환율방어에 실패하고 2년이 채 안되어 탈퇴했다. EU 예산은 수입관세, 회원국의 부가세와 GNI의 일정 비율 납부 등을 통해 조달되며, 농업보조금과 취약지역 지원에 70% 정도가 사용된다. 부담국과 수혜국이 크게 갈리는데 영국은 독일에 이은 제2의 순기여국이었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 대처 총리는 “I want my money back!”을 주장했고 1985년부터 기여금의 일부를 돌려받았다. 2019년 11월까지 유럽집행위원장을 지낸 융커는 퇴임을 얼마 앞둔 인터뷰에서 “영국은 EU 회원국이었지만 결정된 정책을 공유하지 않으려 했고 그들은 가입 처음부터 파트-타임 유러피언이었다”고 쓴소리를 했다. 아마도 영국은 유럽정책에 대한 영향력 행사와 단일시장 접근 등을 고려해 EU에 가입했지만 프랑스, 독일이 주도하는 통합과 정책에 회의가 깊었다. 여기에는 과거의 영광, 달러 이전 기축통화였던 파운드화에 대한 향수도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브렉시트를 보며 생각하기

스위스와 노르웨이는 EU에 가입하지 않았고 스웨덴, 폴란드 등은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으며 아일랜드는 쉥겐조약국이 아니다. 그럼에도 영국의 탈퇴가 유독 관심을 끄는 것은 EU 내의 경제대국이고 첫 탈퇴이기 때문이다. 영국 탈퇴의 EU에 대한 영향, 최대 교역대상인 EU에서 벗어난 영국경제와 정치 진로, EU 친화적인 스코틀랜드 반응, 금융 중심지로서 런던의 위상 변화, 시장친화적인 파트너를 잃은 독일의 입장 약화 등 많은 분석과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영국에 입국할 때는 어차피 여권 검사를 한다는 의미에서 별다른 차이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브렉시트가 이미 4년 반 전에 정해졌고 한영 FTA가 바로 발효되므로 기업으로서도 대비는 되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헤어짐의 과정을 보며 떠오르는 것은 유럽과 동아시아의 대비다. 프랑크푸르트에 근무할 때 EU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며 놀라웠던 것은 동북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에 다다른 통합, 수많은 상설기구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협상과 타협이었다. ‘저거는 안될 거야’라고 예상했던 사안들도 각국 각료들이나 정상들이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면 결과물이 나왔다. 물론, 우리와는 다른 역사적 배경, 다시 말해 헤게모니 국가의 변동, 승패가 누적되면서 타협이 굴복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작용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EU와 브렉시트가 보여주는 협상과 타협을 보며 다시금 우리의 현실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김영찬/ 국제지역학 박사, 전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사무소장

김영찬 korealof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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