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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식(式)’ ‘스마트 파워’를 보여준 당 창건 70주년 기념식

기사승인 2020.10.13  12: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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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LOFO 칼럼 521호

절대적 존재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연설을 통해 한껏 자세를 낮추는 리더십을 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대북 제재,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음과 그것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시인하였다. 물론, 이러한 고백이 처음은 아니지만 당 창건 75주년이라는 중요한 시점에 자신의 역부족을 국내외에 천명하는 용기(?)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만 최고 지도자의 연설은 사전에 충분히 검토되어 발표된다는 점에서 거기에는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수령의 세속성으로 실정을 솔직히 인정

첫째, 수령의 신성성(the sacred)을 버리고 세속성(the profane)을 강조함으로써 김정은 위원장 자신에게 돌아오는 과중한 책임을 면하려 한 것이다. 수령은 ‘신적 존재’로서 무오류의 인간이고 초월적 존재로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령도 인간이기 때문에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주민들의 희망을 모두 들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주민들이 수령을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신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달성되지 않을 때 주민들의 환상은 깨지고 신화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수령에 대한 신화가 깨졌을 때 주민들은 급격한 아노미 상태에 빠지고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것을 간파한 김정은은 이미 2019년 3월에 ‘수령의 신비화’를 금지한 바가 있다.

2019년 3월 6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그는 “수령의 혁명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며 “수령에게 인간적·동지적으로 매혹될 때 절대적인 충실성이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번 연설에서 김정은은 “하늘같고 바다 같은 우리 인민의 너무도 크나큰 믿음을 받아 안기만 하면서 언제나 제대로 한번 보답이 따르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전체 인민의 신임 속에...이 나라를 이끄는 중책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여 우리 인민들이 생활상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역량 부족을 솔직히 시인하였다.

트럼프의 경우에서 보듯이 최고 지도자가 자신의 실정을 인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금번 김정은의 ‘고백 정치’는 수령도 일개의 세속적인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주민들의 수령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인한 낙망과 그로 인한 분노의 폭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정을 고백하는 것이 수령의 권위를 유지하는 것보다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주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성 정치’를 통해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다. 김정은은 주민 및 인민군의 헌신적인 노력을 치하하는 연설 도중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악어의 눈물’일지라도 신적 존재인 수령 후계자가 눈물을 흘린 것은 주민들의 감성(pathos)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실제로 연설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인민군이나 주민들이 있었다. 민중은 감성에 약하기 때문에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logos)을 마비시키는 감성을 철저히 배격했다.

외부의 경제제재는 북한의 핵개발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경제난의 책임을 김정은에게 돌리는 분위기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적 지도자가 눈물을 보이면서 용서를 구하는 순간, 그 책임은 인민 개개인에게로 환원된다. 무엇보다 우리 민족은 상대방의 사과와 눈물에 약하다. 본래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주민이 수령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인데 반대로 수령이 주민들에게 여러 차례 “감사합니다”라고 하니 주민들은 감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민들이 ‘인민’을 하늘처럼 받들겠다는 다짐 앞에서 까지 김정은을 비난하기는 힘들 것이다.

 

실질적인 변화를 추구할 듯

결론적으로 금번 당 창건 70주년 기념식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사회적, 대외적 모든 부문에서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적절히 배합한 김정은식 ‘스마트 파워’를 보여준 행사로 평가된다. 대내적으로는 감성 자극을 통해 김정은 중심의 ‘일심단결’을 획득했고 대외적으로는 군사도발을 회피하면서도 강경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했다. 기념식은 외부인사 초청 없이 야밤에 철저히 내부 통합 목적의 행사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최신형의 ICBM·SLBM 무기의 ‘실험’이 아닌 ‘시위’를 통해 미국의 대북 제재에 대한 저강도 경고를 구사했다. 특히 “하루빨리 이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짧은 대남 메시지를 통해 남한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보임으로써 최근 남한의 반북 정서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향후 김정은은 75주년 기념 연설에서 밝힌 대로 “시간은 우리 편이다”라는 인식하에 ‘자력갱생’을 위주로 하되 “사회주의건설의 더 높은 목표를 점령해나가는 길에서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혁신과 발전, 실질적인 변화”를 추진해 갈 것으로 보인다. 그 기점은 내년 초의 노동당 8차 대회가 될 것인데 김정은은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는 그 실현을 위한 방략과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게 될 것이며 인민의 행복을 마련해나가는 우리 당의 투쟁은 이제 새로운 단계에로 이행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2021년 1월에 개최될 노동당 제8차 대회가 기대된다.

전현준/ (사)남북물류포럼 이사

전현준 korealofo@naver.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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