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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8차 당대회와 ‘새로운 길’; 자력갱생은 답이 아니다

기사승인 2020.09.07  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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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240호

경제개발5개년 전략 실패를 자인한 북한

북한이 경제개발5개년 전략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실패를 사실상 자인했다. 2016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5개년 전략은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4년에 걸친 준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5개년 전략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요 내용은 탄소하나화학공업의 발전, 농업 및 경공업 분야의 재건과 기간산업 분야의 정상화였다.

대규모 건설사업도 진행했다. 여명거리 건설, 양덕온천관광지구 개발, 원산갈마 휴양지 건설, 평양종합병원 건설 등이 추진되었다. 북한의 각종 매체들은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5개년 전략의 성과를 선전하며 성공을 예견했다. 그런데 지난 8월 20일 개최한 당 중앙위 제7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를 소집해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지난 5년간 추진해 온 경제개발5개년 전략의 미진함을 지적했다. 사실상 실패를 자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경제개발5개년 전략의 실패를 자인한 데 대해, 경제제재의 강화, 코로나19 및 자연재해 등으로 예견된 결과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내년에 개최될 당대회와 새로운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통해 북한이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이 5개년 전략의 실패를 가져온 현재의 폐쇄기조를 내려놓고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올 것을 내심 기대하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북한의 고립은 가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긴 장마기간과 연이은 태풍 피해 등으로 올해 작황이 과거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수준에도 못 미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8차 당대회를 보통 5월경에 개최했던 것과는 달리 1월에 잡은 이유도 이러한 경제 난국 타개의 시급성과 함께 미국의 대선결과를 바로 반영해 대처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예견되어 온 북한의 행동

그런데 최근 북한의 이례적인 동향을 분석함에 있어서 다분히 우리의 시각에서 우리의 기대를 반영한 전망과 예측이 많은 듯하다. 정작 북한은 외부세계에서 관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개발5개년 전략의 실패는 이미 2018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부터 북한, 적어도 김정은 위원장은 예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8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적으로 끌고 나왔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대외환경 개선은 본인이 책임질테니 내부문제 개선에 주력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2018년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이 미국을 믿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대미관계 개선에 주력하는 것에 대해 북한 내부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북한은 2019년 12월 31일 당중앙위 전원회의 결정문에서 대미관계 개선은 장기전으로 진행될 것이며, 이 기간 동안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전개할 것을 당의 정책방향으로 정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이 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경우 북한은 새로운 길을 갈 것이라고 예고한 결과였다. 거꾸로 해석하면 그동안 북한은 대미관계는 단기간에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자력갱생에 집착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권 출범 초기부터 미국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부인 이설주와 함께 관람한 공연에 미키마우스가 등장하고, 평소 농구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만을 초청하기도 했다. 북한은 2012년부터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 이전까지 대외관계를 완전히 단절한 채 핵무기 개발에만 주력했다.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및 대미관계 개선을 천명하고 나섰다. 그리고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가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한 경제개발5개년 전략의 기저에는 미국과의 관계개선 및 경제제재의 완화, 국제사회는 물론 남한과의 경제협력을 염두에 둔 내용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하노이 회담 이후 이어진 김여정과 최선희의 담화에는 어김없이 미국에 대한 김정은의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유학시절 머물렀던 스위스 지역을 생각하며 원산개발, 마식령스키장 건설, 강원도 세포축산기지 건설, 원산갈마 휴양지 건설 등을 진두지휘했다.

경제적으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와 포전담당제를 도입하여 시장기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한편, 이른바 북한경제의 물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추진해 왔다. 무연탄을 이용한 석탄화학공업을 대신해서 갈탄을 이용한 탄소하나화학공업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기간화학산업을 재편하려고 했다. 또한 석탄을 비롯한 지하자원 수출의 무역계획을 풀어서 대외무역을 확대시키고 경공업 분야에 중국자본 유치를 도모했다.

북한은 2019년 4월 헌법개정에서 기존의 경제운영방침이었던 ‘대안의 사업체계’와 청산리 방식을 삭제하고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경제운영의 기본 방침으로 대체했다. 이 조치는 사실상 전인민적 소유를 고집하던 북한이 협동적 소유를 수용하는 셈이므로 소유권의 변동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북한은 중앙급 경제특구 4개와 지방급 경제개발구 23개 등 27개의 개방지역을 설치하고 외자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내부적으로 준비를 하면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했는데 결과는 회담 결렬로 나타났으므로 김정은 위원장은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은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지도부의 심정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렇듯 경제개발5개년 전략은 대미관계 개선을 전제로 추진했던 만큼 그것이 틀어진 상황에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지난 8월초에 개최된 당 정치국 회의에서 김재룡 후임으로 김덕훈을 내각총리로 임명했다. 이유는 내각의 경제조직 사업능력을 분석 평가한 결과라고 했다. 그런데 김재룡이 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당 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봐서 문책성 경질이라기보다는 전략 변화에 따른 쇄신을 명분으로 한 전시성 인사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당대회와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자력갱생을 주축으로 할 듯

이제 세간의 관심은 내년 1월에 개최될 8차 당대회와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쏠리고 있다. 앞선 분석에 따른다면 북한은 미국과의 장기전을 벌이는 기간을 적어도 5년으로 잡고 있으며, 이 기간 동안 자력갱생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 방향성을 다르게 할 수도 있겠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는 속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 점을 고려하면 미국 대선결과와는 상관없이 북한은 장기전에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대내적으로 식량의 자체 해결을 위해 농업생산성 제고에 주력할 것이다. 경제개발5개년 전략에 2020년에는 비료 120만톤 공급을 목표로 삼은 바 있다. 그동안 북한은 흥남비료연합기업소의 개보수와 함께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 등에서 질소비료 생산의 정상화를 추진했으며, 순천인비료 공장을 완공하여 인비료 공급체계도 마련했다고 선전한 바 있다. 120만톤 비료 목표는 북한의 120만 정보의 농지에 정보당 1톤의 비료를 투입하면 10톤의 알곡을 생산할 수 있다는 북한식 계산방식에 기초한 것이다. 계산대로라면 1,200만톤의 알곡을 공급할 수 있으니까 식량문제는 완전 자급이 가능하다.

에너지 분야는 탄소하나화학공업을 정상화하면 북한에 무진장 매장되어 있는 갈탄을 이용해 원유 및 수소가스를 생산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계산할 것이다. 식량과 에너지만 자체 조달이 가능하다면 북한은 얼마든지 버틸 뿐 아니라 경제발전도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에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할 것이다. 북한은 이미 홍콩 국가보안법 문제에서 중국을 분명히 지지하는가 하면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 편에 확실히 섰다. 지난 6월 이후 북-중 무역이 일부 재개되기 시작한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대남관계에는 지금과 같이 무대응으로 일관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2월 31일 당 중앙위 결정문에 대남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김여정이 당 제1부부장으로 대남문제를 전면 위임 받았다고 언급한 점을 고려할 때 김정은 위원장의 직접 관리 범위에서 대남문제는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는 미국이 변하지 않는 한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대선결과와 무관하게 미국의 입장 변화를 기다리고 압박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핵무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전략무기 개발의 주역으로 알려진 리병철 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임명된 것도 주목할 일이다.

이렇듯 내년 1월 북한의 당대회와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외부세계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식 자력갱생이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모든 기관들은 이미 이러한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들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연일 당 정책의 관철을 선동하고 있다.

 

자력갱생의 고집은 북한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북한이 자력갱생을 다시 고집하고 나설 경우 북한 상황은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대선결과와 상관없이 기존의 제재강화와 핵포기 우선정책을 고수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은 더욱 강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미-중 충돌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 역시 북한만을 편들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북한 내부는 이미 시장경제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자력갱생은 시장경제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내부적으로 자원을 동원하려 해도 시장이 작동하지 않으면 동원할 수 없다. 거창한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세워도 허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노이 회담의 교훈은 미국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핵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신뢰할 수 있는 행동조치로 첫 발자국을 떼는 것이 자력갱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시작이 될 것이다.

더욱이 남한은 북한의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북한의 안전과 경제발전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북한이 주민들의 생활을 선차적으로 고려하는 진정한 애민정신으로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과감한 정책 전환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내년 1월의 8차 당대회는 바로 이를 위한 기회이다.

평화재단 hyeonan@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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