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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변화의 키워드 ‘시장화’ 그리고 ‘여성’

기사승인 2020.08.26  15: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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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일상생활은 지금 남성이 아닌 여성이 이끌고 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여성과 경제를 중심으로 밑동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25일 (사)뉴코리아가 개최한 아카데미에서 ‘김정은 시대 북한 사회의 변화’ 제목의 강연을 통해 북한사회의 시장화 진행상황과 이 변화를 여성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박 연구위원은 “북한 미혼남녀들의 배우자 조건 1순위는 경제력, 2위는 출신성분(집안), 3위는 개인의 발전가능성”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발전가능성과 관련해 박 연구위원은 “남자가 돈이 없어도 여자가 뒷바라지해서 대학 보내고 하는 등 발전가능성을 많이 염두에 두고 있다. 이것이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북한의 시장화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주목했다. ‘시장화’와 관련 박 연구위원은 “북한의 시장화가 중요한 이유는 선택, 자아(자율) 등 ‘시장’의 성격 때문”이라며 “배급 사회의 특징은 선택이 필요없지만 시장은 선택을 통해 자아, 주체성이 살아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 25일 서울 청파로 카페효리에서 (사)뉴코리아가 주최한 아카데미에서 ‘김정은 시대 북한 사회의 변화’ 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김정은 등장 이후 변화된 모습인 청년 중시와 부패간부 숙청, 서양식 건축물 등장, 핵·미사일 고도화 등을 언급하며 “2000년대 이후 유아, 청소년기를 보낸 청년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김정은 지지세가 높다.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자신들의 자존감 상승을 등치시키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박 연구위원은 이들 청년세대에 대해 “충동적이기도 하고 무책임하지만 또한 저돌적인 세대”라며 “북한의 미래를 생각할 때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청년세대는 ‘고난의 행군’ 때 청년기를 보낸 중장년 세대가 가정과 국가에 대한 책임감이 깊은 반면 북한사회의 시장화로 체제·지역격차가 심해지며 체제불만이 가장 높은 것과는 대조되는 점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시장의 존재는 1980년대에도 가내수공업 형태로 암시장에 기여해 왔지만 결정적인 등장은 1990년대부터라고 박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와 자연재해로 인해 경제난·식량난을 겪으면서 군부 중심, 수령 중심의 남성 중심 사회였던 북한이 아래로부터 시장화, 정보화가 일어나며 근본적인 변화를 겪어 왔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7년에서 길게는 15년까지 군복무를 하며 전방을 책임지지만 여성들은 후방에서 가정경제를 떠안을 수밖에 없고 여기서 장마당의 역할이 확대돼 왔던 것이다. 가정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도 여성들의 몫이었다.

박 연구위원은 “‘돈의 맛’을 알게 된 여성은 돈이 권력보다 낫다는 걸 알게 깨달으면서 때론 권력을 움직이기도 하고 자신의 가치를 알아가게 됐다”고도 했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때 학교에서 요구하는 물건이나 돈을 크게 냄으로써 학교 당국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그런 예라는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에 대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등바등하다는 뜻의 ‘이악한 어머니들 덕분에 고난의 행군을 승리할 수 있었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반면에 남성들은 ‘시장화’ 과정에서 무력감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박 연구위원은 “남한이든 북한이든 계속해서 전쟁을 준비하는데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며 “장군(장성)들이 많아지니 그들을 위해 사업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군대는 사실상의 군산복합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름은 군대 복무인데 실상은 군대 산하 기업소에 근무하며 돈벌이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 보니 남성들은 무력감에 빠지게 되고, 고위층은 부정부패에 물들게 된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북한 사회가 겉으로는 수령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 같은데 안을 들여다 보면 눈치 보고, 적당히 타협하는 등 균열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부부관계도 평등하게 바뀌고 있다. 북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남편은 불편, 아들은 맹장, 딸은 심장’이라는 말을 근거로 들었다. 남편은 별 도움이 안 되고, 아들은 군대 10년 가까이 집에서 뒷바라지를 해줘야 하지만 딸이 없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출산율도 2014년의 경우 북한 기혼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이 1.89명으로 실제 1인당 1명 정도밖에 낳지 않는다는 게 박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그는 “2000년대까지는 식량난과 경제난 때문에 출산율이 낮았지만 2010년 이후부터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출산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도시, 고학력자, 고소득 가구 출신 기혼여성들의 저출산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돈버는 여성들의 경제권 강화, 가정이나 사회에서의 발언권 강화는 최근 북한 내 드라마,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고 박 연구위원은 덧붙였다.

이 밖에도 질의 응답에서는 북한 체제와 미래 방향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최근 김정은이 김여정을 비롯한 몇 사람에게 권력을 위임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박 연구위원은 “그만큼 김정은이 많이 지쳐 있다는 것”이라며 “김일성 시대에는 인민들에게 닭모이 주는 것까지 가르칠 정도였지만 이런 식의 만기친람식 통치가 한계에 이르다보니 김정은 시대에는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미래와 관련해서는 “북한 정권이 오래 가려면 체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 이양을 넘어 집단지도체제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이 이미 1980년대에 집단지도체제로 바뀌어 개혁·개방으로 갈 수 있었듯이 북한 역시 국제화를 위해서는 개혁·개방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걸 위해서는 1인 통치 방식이 아닌 집단지도체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북한 주민들의 (변화)흡수력은 굉장히 빠른 듯하다”며 “베트남 노동자의 노동력을 1로 봤을 때 북한 노동자는 1.3 내지 1.5로 볼 만큼 노동력 수준이 높다”고 덧붙였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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