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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홍정길, 이승장 그리고 박철수 목사가 한국교회에 남긴 복음적 유산

기사승인 2020.05.26  14: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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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언급한 네 분 목사님들은 복음주의자들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고, 한국교회에 독특한 영향력을 남겼으며, 내가 잘 아는 분들이기도 하다. 이분들이 한국교회에 남긴 영향력을 단편적으로나마 정돈해 보려고 한다.

복음주의라는 말을 신학적·교회사적으로 정돈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복음주의자는 첫째,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을 믿는 자를 의미한다. 물론 성경해석의 심오함과 다양성이 배재된 것은 아니다. 둘째, 성경의 증언대로 예수의 유일성을 믿는 자를 뜻한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주님으로 영접함에서만 시작되는 것을 믿는 자들이다.

복음주의를 이와 같이 정의하면 자연히 ‘복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심오한 질문이 나온다. 복음이란 오직 예수 자신이다. 고로 복음이란 예수의 삶과 그 가르침이다. 부분적이 아니라 총체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복음 사역자들을 분류하면 첫째,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가 있고 둘째, 복음의 싹을 북돋고 열매맺게 하는 자가 있고 셋째, 열매 맺지 않는 싹을 갈아엎는 자가 있다. 물론 이 세 가지 사역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이니 균형있는 사역자야말로 최고의 충성된 종이다.

이와 같이 균형있는 사역은 최초에 예수님이 명령하셨고 사도 바울이 본을 보이셨다. 바울 이외에도 교회사에 드러난 충성된 자들이 반드시 있겠지만 나의 무지로 그런 분들을 거의 알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매우 희귀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네 분 이야기는 내 무지의 단면을 드러내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더군다나 현재 생존해 계신 세 분께는 큰 결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미 목회 현장을 떠나셨기에 역사적 관점의 탐구가 진행되는 과정임을 혜량해 주시길 빈다.

고 김준곤 목사님은 이 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힘있게 전한 선각자였다. 그의 사역을 총체적으로 정돈하고 평가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다만 ‘김준곤’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그의 꿈과 열정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꿈을 4영리라는 복음의 요약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다. 4영리 전도는 과연 사람들에게 예수를 간단명료하게 전하는 놀라운 수단이었고 그 전도 방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없는 실체적 진실이다.

문제는 그가 의식했든 못했든 그렇게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의 생명력이 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부지기수였다. 4영리 전도는 생명의 탄생이었고 새생명의 시작이었다. 시작이 너무 강조되다 보니 어느새 그것이 생명의 본질이 되어버렸고 전부가 되어버렸다.

총체적 양육에 실패한 한국대학생선교회는 한국교회의 천박성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성사회의 복음화가 그리스도인의 천박성을 가져온 역설적 현상을 낳은 것이다.

김준곤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은 김준곤의 신실한 제자 홍정길 목사이다. 평생을 김준곤과 함께 대학생 선교에 헌신하기로 한 홍정길은 그의 소망과는 다르게 어느 날 반포에 남서울교회를, 수서에 남서울은혜교회를 개척하여 각각 20년이 넘도록 목회한다.

아마도 홍정길 목사만한 목회자를 찾는다는 것은 한국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세계교회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 말은 굉장한 세계적 눈높이를 가진 손봉호 교수의 평가이다. 누구보다도 홍정길 목사의 인격과 목회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나도 손봉호 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홍정길 목사는 성도를 양육하는 목자로서 탁월한 인성과 은사를 갖추신 분이다. 그러나 그의 목회에는 결과적으로 치명적 결함이 나타났다. 성도들의 개인적 착함과 헌신을 가르치는 데는 큰 열매를 맺었지만 사회의 구조악을 타파하고 구조악 때문에 발생한 개인적·계급적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도록 가르치지는 못했던 것이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홍정길의 한계를 극복하신 분이 이승장 목사이다. 이승장 목사는 홍정길 목사처럼 대학생선교운동으로부터 시작했다. 그가 목회에만 전념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를 선교운동가로 분류해야 할지 목회자로 분류해야 할지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승장 목사는 개인의 성장과 헌신을 바탕으로 사회악 척결과 사회구조가 안겨준 기득권까지 거절해야 한다는 것을 예수정신으로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승장 목사의 목회철학이 복음의 총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다만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신학적 총체성뿐인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그의 총체적 복음 이해가 목회자로서 어떻게 열매 맺었는가? 하는 문제는 객관적 평가가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선교 150주년이 기까워지고 있는 한국교회는 그동안 엄청난 양적 성장을 해왔지만 최근 30여년 동안은 양적 성장의 부작용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당연히 한국교회의 개혁과 재구성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여기에 부응한 선구자가 박철수 목사이다. 그는 30년 전부터 수많은 책을 저술하면서 끊임없이 한국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고 외쳤다. 그의 외침은 기존 목회자들을 놀라게 했다.

목회자들은 그의 목소리를 외면했지만 허다한 성도들과 젊은 목회자들이 그의 목소리를 청종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같은 목소리들이 봇물 터지듯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열매 맺지 못한 싹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리 시대의 선지자들이다.

내가 아는 새 시대의 선지자들 중 군계일학 같은 존재는 김회권·김근주가 있고 새시대 젊은이들을 양육하는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있다.

이 사람들이 실패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돕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공동 사명이다. 잘못된 것을 갈아엎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 것을 일으키는 창조적 파괴자가 되도록 안내해야 한다. 이들과 생각이 다른 기성 세대가 이들을 적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젊은이들의 가혹한 비판을 받고 있는 기성세대가 다음세대를 위해 오히려 그들을 격려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물론 개혁그룹도 복음의 총체성에 대한 각성을 빙자하여 지금까지 복음을 위해 온힘을 다해 헌신해온 사람들을 비판적 시각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런 태도는 개혁에 대한 철저함이라기보다 교회사를 통째로 부인한 교만이요 독선이다.

내가 이런 글을 쓰기엔 너무 이른 감도 있고, 서툰 부분도 있지만 이 글을 쓴 이유는 세 가지 유형의 특징을 가진 사역자들이 서로가 각각 다른 소명을 인정하고 서로서로 협력하면서 지금, 여기에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거룩한 사명을 함께 이루어가야 한다는 간절한 열망 때문이다.

물론 한사람의 목회자가 탁월한 균형감각을 갖고 바울 같은 목회를 할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런 목회자는 한 세기에 한두 사람 나올 듯 말 듯한 것이 인간사의 현실이다.

아무쪼록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오직 예수를 위해, 오직 그 나라를 위해 우리 함께 힘을 모으자! 그런 과정을 지나면서 서로 온전해져 가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강경민/ 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

강경민 nils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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