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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총선을 디딤돌로 한반도 평화 만들기에 다시 나서자

기사승인 2020.04.18  23: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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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231호

한국 정치 주류 패러다임의 전환

1945년 분단 이래 한국 국내정치의 주류는 반공을 기치로 내세운 보수정권이었으며, 세계적인 냉전구도 속에서 북한과 적대적 공존관계를 형성했다. 대립적 남북관계에 기반을 둔 보수정권은 장기간 ‘적으로서의 북한’을 상대해왔고 또 필요로 했다. 아울러 미국은 한국의 진정한 친구이자 절대적인 동맹으로 자리 잡았다. 자유당 정권에서 시작된 독재체제는 반공과 반북을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으며, 북한에 대한 동조나 유사한 주장을 이적행위로 간주해왔다.

평화통일과 남북대화를 주장했던 진보당의 죽산 조봉암 선생을 비롯해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등 많은 진보인사들은 조작된 용공사건을 통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관철을 위해 민주인사들을 탄압한 대표적 사례로, 관련자 8명은 중앙정보부의 고문으로 조작되어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뒤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되었다.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의 암흑의 날들이었다.

한국의 국내정치를 장기간 지배해온 보수정권의 존재를 단지 일부 독재세력에 의한 것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에도 불구하고 보수정권을 지지했던 상당수의 민의를 모두 강요에 의한 것으로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분단체제의 극단적인 남북 대립구도 속에서 체제경쟁의 승리와 산업화의 요구는 보수세력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 환경적 요인에 해당한다.

2020년 4.15 총선은 한마디로 ‘한국 정치 주류의 교체’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장기간 한국 국내정치의 주류로 독보적 지위를 누리던 보수진영은 2020년 4.15총선을 통해 진보진영에게 자리를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압도적인 슈퍼 여당의 탄생은 사실 우연이 아니며, 1980년대부터 시작된 민주진영과 한반도 평화세력의 지난한 노력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민주화 운동의 시대인 80년대 청년 세대의 대부분이 60대 전후라는 점에서 한국전쟁과 냉전체제를 인적으로는 세대교체 한 상황이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에도 불구하고 보수진영은 이미 효용 가치를 상실한 과거의 대립적 이데올로기와 반공에 집착했으며, 결국 정치적으로도 주류의 자리를 넘겨주는 결과를 자초했다. 미래 비전 없이 과거에만 매달린 업보다.

 

새로운 주류로서 진보진영의 자세

보수진영의 장기집권에 따라 한국 사회와 한반도의 질서 역시 영향을 받았다. 대외 정책에 있어서 미국은 언제나 상수였으며, 굳건한 한미동맹은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담보하는 기초였다. 적대적 대북정책과 북한을 압도하는 안보역량의 확보가 최우선의 과제였다. 반공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 내에 보수적 이념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면서 모든 일상에 영향을 미쳤다. 개인보다는 국가,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기보다는 국론통일을 우선시했으며, 분배에 대한 요구는 성장의 논리에 억눌렸다.

이제 주류로 등장한 진보진영 앞에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 전 분야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4.15총선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이제 임기 2년 남짓을 남겨두고 있을 뿐이며, 내년부터는 사실상 차기 대권 레이스로 접어들게 된다. 따지고 보면 진보진영이 이번 총선에서 압승한 데는 코로나19 사태라는 우발적 요인과 보수야당의 자충수를 무시할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 점수는 좋은 편이 아니며, 외교안보정책면에서도 내세울 성과가 뚜렷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민의는 다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진보진영은 자축에 앞서 차분히 자신을 성찰하고 향후의 과제를 고민할 일이다.

한국의 보수진영이 지배해온 질서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듯 진보진영이 주도하는 질서 역시 지속적으로 완성해 나가야 한다. 먼 미래를 내다보되 실현 가능한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나가는 장기적인 여정을 시작하는 일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사태는 전 지구촌에 전대미문의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전문가와 미래학자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를 분석하는 데 분주하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이후는 분명하게 다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우려스러운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지구촌 차원의 경기침체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코로나19 사태 이후 닥칠 경제적 파장과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인 상황에서 진보진영이 모든 분야에 걸쳐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무리다. 진보진영은 우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정해야 한다. 특히 압승에 도취해 야당 및 보수진영과의 협치(governance)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역구에서 진보진영이 압승했지만 소선거구제의 특성과 관련이 크며, 비례대표의 득표율에서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민의는 보수진영의 잔영 속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과제

4.15총선의 승리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일정한 동력을 확보했다. 코로나19 사태의 대응과 후유증을 해소하는 일을 우선하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동력을 바탕으로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2018년부터 숨 가쁘게 진행된 한반도 정상외교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모두에서 교착국면에 빠져 있다. 기대를 모았던 지난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로 끝났으며, 이후 북한은 작년 5월부터 최근까지 단거리 발사체를 중심으로 중·저강도의 무력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에 맞춰 한반도 상공에는 거의 매일 미군기의 정찰 활동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북한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예고한 성탄절 밤과 새벽에는 무려 4차례나 정찰비행이 이루어졌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의 현실이다.

남북관계의 교착과 미국의 대선 캠페인을 이유로 북·미 비핵화 협상을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북제재의 장기화와 코로나19 사태로 북한 내부 사정은 매우 어렵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물 부족 현상과 비료 수입의 중단, 그리고 노력 동원의 제약 등으로 북한의 식량문제가 심각하다. 북한이 내부의 어려움에 처할 경우, 대남 또는 대외적인 강경 행보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우려해야 한다. 여러 난제에 처한 김정은 정권이 미국의 대선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것이라는 판단은 안일한 것이다. 미국 대선 결과가 북·미관계와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역시 불확실하다.

4.15총선을 계기로 확보된 동력을 활용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척을 위해 할 일을 해야 한다. 우선 입법부 차원에서 오랜 숙원인 남북관계의 제도화에 나서야 한다.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해 ‘4.27 판문점선언’ 등 많은 합의를 도출했으나 국회차원의 비준을 결여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제 국회 내에서 남북합의를 비준할 수 있는 정치지형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4.27 판문점선언’의 비준 등 기존 남북합의의 법적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조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통일경제특구법 등 장기 계류된 남북관계 발전 관련 법안의 처리도 모색되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과제는 대통령 공약사항인 ‘남북기본협정’의 체결과 국회의 비준이다. 통일 시까지의 남북한 간 잠정적 특수관계와 상호인정을 내용으로 하는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할 경우 남북한이 처한 다양한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법제화와 함께 실현 가능한 개선조치를 취해야 하며, 우선 유엔 대북제재위원회가 승인한 코로나19 방역에 필요한 물품을 북한에 즉각 지원해야 한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제안한 의료협력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힌 적이 없으며,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코로나 위로 친서를 보내기까지 했다. 북한은 미국의 제안에도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조류 독감, 간염 등 북한에 만연한 전염병 방역을 위한 남북 보건의료 협력도 가속화 할 필요가 있다. 연초 우리 정부가 밝힌 개별관광과 접경지역 협력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협의 구도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관광산업에 역점을 두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우리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며, 남북 보건의료 협력은 접경지역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남북정상회담을 견인함으로써 탑다운 방식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가동시키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북제재와 북·미관계 교착국면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실현 가능성과 적절한 의제선정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불식되어야 한다. 여러 어려움에 처한 김 위원장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제안을 마냥 외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당면한 보건의료 및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규모의 인도적 지원은 남북정상회담의 주요의제가 될 수 있다. 남북기본협정 체결 역시 남북정상회담의 핵심의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하노이 이후 불신관계로 접어든 남북관계를 일신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북·미 비핵화 협상을 견인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대선국면에서 어려움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도 북·미관계의 성과도출에 관심을 가질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분단체제 형성 이후 최초로 한국 정치의 주류를 형성한 진보진영은 이제 차분히 향후의 과제를 숙고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척을 위해 가능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2018년 극적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입구 진입에는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시발점으로 하는 남북관계개선 조치가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일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남북관계를 제 궤도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이번 총선에서 표를 모아 준 국민의 뜻을 받드는 길이다.

평화재단 hyeonan@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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