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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시착’과 북한 기득권층에 대한 단상

기사승인 2020.03.02  14: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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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불시착'과 내가 경험한 북한(2)

사전적 의미로 기득권층(establishment)이란? 사회·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권리를 누리고 있는 계층 또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 권리를 차지한 특정한 자연인이나 법인을 의미한다. 북한에서 전혀 몰랐던 이 용어는 한국 살이 18년간 많이 들어왔고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 의미로 각인되어 있다.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약속대로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이하 ‘사불’ 드라마) 2탄의 이야기를 해보자.

 

어디에나 존재하는 기득권층!

‘사불’드라마에 등장하는 남북의 기득권층은 뚜렷하다. 남한의 윤세리 집안은 물론이고 북에서는 리정혁과 서단의 가족이 대표적이며, 그 다음 ‘보위부’와 ‘군관들의 가족’ 순으로 얘기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극중 사랑을 키워가는 윤세리와 리정혁 사이에 때마다 끼어들어 시청자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조철강이다. 그는 ‘보위부’라는 기득권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사실 북한에서 가장 하위 층인 ‘꽃제비’ 출신이다. 또한 그는 극중 불의한 방법으로 야욕을 채워가는 인물로 묘사된다.

여기서 잠깐!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았던 북한현실에 가까운 다른 각도에서의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평소 나는 부자나 정치인은 다 악하고, 가난한 사람은 모두 선하다는 발상이나 또는 그 반대의 발상을 지적해왔다. 어떤 이론이든 이분법적인 논리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그런 전제를 하고 볼 때 ‘사불’ 드라마는 북한의 상위 1%인 ‘리정혁과 서단의 가족’은 선하게, 그리고 하위 1%에 속하는 꽃제비 출신 조철강은 악한 인물로 설정했다는 점을 기억하자.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북한의 일반 ‘기득권층’에 대한 것이며 이는 ‘사람 자체에 대한 선과 악의 기준’으로 쓰는 의미가 아니다.

주지하듯이 북한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를 주창하고 왔는데 실제 북한역사의 발전과정을 보면 그 안에 담고 있는 오류가 아주 많다. 그 오류 중 하나가 평등을 외쳐온 북한에 ‘기득권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북한의 기득권층에 대해 나는 그냥 러프하게 이렇게 평하고 싶다. 과거에는 ‘신분 중심’으로, 지금은 ‘돈 중심’으로 기득권층이 형성되는 중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북한의 최전방인 군사분계선에서 근무하던 군인이 남한에서 온 여성을 감추고 속이는 정황이 발견되었다면 북한사회에서는 신고하는 것이 정상이다. 조철강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잠깐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커버. tvN 제공

북에서 꽤나 공부를 잘했던 나는 ‘평양외국어대학’을 가는 것이 최종목적이었다. 그런데 이 꿈이 거품이 되어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평양철도대학을 다니던 친한 언니가 방학에 와서 해준 말 때문이었다. “평양외대를 가려면 첫째, 토대(출신성분)가 좋아야 한다. 둘째, 인물심사에서 키 160㎝ 이상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력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정말 뛰어나게 실력이 좋아 평양외대 가더라도 졸업 후 배정받을 수 있는 직업은 학교 영어교사가 최선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날로 꿈을 접었다. 우선 1, 2번 모두 탈락기준이고 실력으로 간다 하더라도 학교 교사는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냥 일반대학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큰 사건이 하나 또 터졌다. 물론 내가 자초한 일이지만 말이다.

우리 반에는 다른 반보다 기득권층의 자녀들이 많았다. 문제는, 이 친구들 중에 공부를 잘 못하는 몇 명이 시험지를 고치고 성적을 수정하는 일이 가끔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담임선생님뿐만 아니라 학교 교사들 대부분이 학부모들에게 뇌물을 받고 해서는 안 될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태어나서 국가와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배워 세계관을 형성해갔던 나는 ‘이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이 일을 아시면 얼마나 마음아파하실까? 이러다 나라가 망하면 어떡하지? 공부 못하는 아이가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되면 사람을 죽일 것이고, 공부 못하는 애가 교사가 되어 가르치면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 것이다. 이 일은 막아야 한다.” 이런 유의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딴에 나라걱정을 한 것이다. 결국 졸업을 앞두고 도당에 이 문제를 고소하는 편지를 쓰게 되었고 결과는 참담했다. 학교가 발칵 뒤집혔고 평소에 짱이었던 나는 하루아침에 친구들로부터 왕따가 되고, 졸업 후 대학은커녕 어느 광산에 배치를 받았다. 당시 졸업 후 직장배치의 권한은 담임선생님에게 있었다. 북한에서 최하위층의 신분을 갖고 있던 내가 기득권층에 짓밟힌 잊을 수 없는 일화이다. 물론 반전의 이야기도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런 맥락에서 조철강을 본다면 그는 충분히 북한의 기득권층에 저항한 정의의 인물로 그려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특히 기득권층의 권력다툼의 결말은 마지막 회에서 잘 보여준다. 기득권층의 부정행위는 남북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든 다 있음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기득권자’와 ‘기득권자의 행위’에 대한 재해석

다시 한국으로 건너와 보자. 1년 전 ‘기득권층’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했다. 어떤 남한 분과 사석에서 얘기를 주고받던 중 내게 툭 던진 말이 있다. “이사장님도 기득권층이죠?” 화들짝 놀란 내가 되물었다. “네? 제가 기득권층이라고요? 무슨 그런 말씀을.. 제가 무슨 기득권층이라고...” “아니, 맞잖아요?! 북향민들 중에서 이사장님은 기득권층에 속하죠. 이사장이고, 공부도 할 만큼 했고 기득권층이 맞죠!”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지만 생각을 바꿔 좀 더 먼 곳에 서서 타자의 위치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많이 놀랐다.

사실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로부터 들어온 말이 있다. “북향민들 중 상위 1%에 속하는, 정착을 정말 잘한 케이스다. 그냥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 와서 이사장이라는 직책에 이유 불문하고 집, 차, 멋진 신랑과 박사학위까지 소유했다. “아! 정말 그렇구나! 어떤 면에서 보면 나는 가진 것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구나!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았다. 한국에 와서 17년 만에 듣는 ‘기득권자 박예영’에 대한 재조명의 시간이었다.

결국 나의 오류는 ‘기득권자’와 ‘기득권자의 행위’에 대한 혼선이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그냥 최선을 다했고 ‘기득권층’의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니 억울할 것이 없다. 다만 ‘기득권층’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평소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강하게 반발했던 것이다. 어떤 노력을 하여 ‘기득권자’라는 이야기를 듣는 위치에 갈 수는 있다. 다만 이후 ‘기득권싸움’이라는 낯 뜨거운 욕을 먹지 않으려면, 있는 위치에서 더욱 마음과 머리를 숙여 사회 곳곳에서 필요로 하는 자리에 서서 일해야 할 것이다. ‘사불’ 드라마를 통해 ‘기득권자’와 ‘기득권자들의 행위’에 대한 재해석까지 하게 될 줄이야?

지금 북한에는 그동안 기득권층에 눌려 살았던 이들이 돈으로 또 다른 ‘기득권자’들로 탈바꿈을 하고 있다. 어쩌면 수많은 조철강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 호에는 ‘한류의 현장! 통일의 현장 북한 장마당!’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한다.(계속)

박예영/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

박예영 ote20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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