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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오케스트라는 남한의 심포니로부터

기사승인 2019.12.31  13: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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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사람은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한다. 쉬면서 한 주간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주일을 성수하며 다음주를 생각한다. 지나온 주간의 역사를 주님께 감사드리며 오는 주간의 삶을 주님께 맡기는 간구의 예배를 드린다. 주일은 한 주간의 끝이자 다음 주간의 시작이다. 주일의 뜻을 다음 주간에 지속되는 일상 속에서 펼쳐지게 한다. 주일의 ‘신앙생활’이 주간의 ‘생활신앙’으로 이어진다. 신앙이 생활 속에 잉태되고 열매 맺는 삶이다.

태양력으로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이다. 하지만 신앙인은 12월 마지막 달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12월에 맞는 ‘성탄’을 새해의 출발로 삼는다. 성탄은 신이 인간이 되신 사건이고, ‘하늘나라’가 세상나라에 잉태된 사건이다. 그 나라의 이름은 하늘에서는 ‘영광’의 나라라 하며, 땅에서는 ‘평화’의 나라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성탄을 선포한 성서말씀은 “하늘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누가복음 2:14)라 요약한다.

새해를 말하면서 갑자기 성탄을 들먹이는 이유가 있다. 송구영신의 바탕이요 비전이라 믿기 때문이다. ‘예수 믿고 천당!’ 기독교 신앙인에게는 익숙한 담론일 것이다. 아직도 길모퉁이에서 어깨에 팻말을 걸머지고 외치는 자들을 가끔씩 만난다. 사실 그 천당의 실체는 죽은 뒤에 영혼이 가는 피안의 도피처가 아니다. 성탄의 예수는 바로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땅에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평화의 나라’의 주인이시다. 그래서 그는 우리들을 향하여 “주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주기도문)라고 기도하라고 명하신다.

한반도의 성탄은 한반도의 평화의 출현이다. 평화는 한반도의 희망이고 하늘의 약속이다. 그런 성탄을 먹고 사는 자는 복이 있다. 그래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다. 이런 평화의 나라를 불교에서는 ‘정토’라고 하며 또 천도교는 그런 평화의 나라에서는 ‘인내천’의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가르친다. 칸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온 세계가 그러한 ‘영구적 평화’를 누리게 하자고 제안한다. 종교가 다르고 이념과 사상이 달라도 한반도와 이 세계에 임해야 할 ‘평화의 나라’, ‘평화의 세상’을 실현하려면 서로간에 교류와 협력과 연대는 긴요하다.

공멸의 양극화를 극복하는 첫걸음은 생산적 경쟁과 합리적 협력을 가능케 할 ‘중심’을 바로잡는 일이다.

또 한반도의 평화를 수놓을 우선적인 연대와 교류 협력의 당사자는 남과 북의 정부요 국민이다. 오랜 동안의 적대적 분단과 대결을 평화적 공존과 협력으로 틀을 바꾸고 상생의 복을 누릴 결단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가 바라는 민족의 통일과 국가적 통일은 궁극적 희망이기는 하나, 그 길은 멀다. 북이 요구하는 체제보장과 북핵문제는 한 동전의 양면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구체적 당사자인 남과 북, 북과 미국 사이에 그동안 수많은 노력이 다방면으로 기울여져 왔다. 하지만 여전히 실질적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혹 남북이 그리고 북미가 각기 자기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평화지향으로 바꾸는 변화의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상대방에게만 일방적으로 변화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는지 심각하게 살펴보아야 할 시점이다.

실제로 지금 가장 현실적인 가능성은 남북과 북미가 평화공존을 바탕으로 선의의 가치관 실현경쟁에 나서는 일이다. 평화라는 단어 속에 내포된 자유, 인권, 공정, 정의, 복지의 진정한 가치관의 경쟁 말이다. 평화공존은 평화적인 방식으로 가치관 경쟁을 하자는 것이며, 그 경쟁의 승패에 따라 통일의 모습이 결정될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평화공존의 길을 선제적으로 결단하고 밀고 가는 것이 진정으로 평화와 통일로 향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단과 실천은 앞서 말한 삶의 기본 가치관에 대한 내공을 쌓고, 실현할 자신감이 있고, 힘 있게 밀고 갈 준비가 되어 있는 편에서 먼저 이루어지는 방식이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을까? 먼저 우리들 남한의 사정을 살펴보자. 평화는 남과 북이 상호간에 협력해서 공동으로 누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라도 남한 나름대로의 내적 평화를 만끽해야 한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은 ‘3만 불 소득-5천 만 인구’를 갖춘 신진 선진국 대열에 7번째로 등극했다. 기이하게도 세계 제2차 대전의 세 승전국(미국, 영국, 프랑스)과 승전국의 경제협력을 받아 일어선 전범 3국(독일, 일본, 이태리)이 독무대로 있다가 한국이 기적같이 7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극이다. 한때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으나 이제는 자주민주국가로 우뚝 서게 되었고, 전후 최하위권을 맴돌던 절대적 빈곤을 딛고 일어나 기술경제 강국으로, 또 한류 중심의 첨단 문화예술의 선두주자로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와 민족 전쟁의 고통, 민족분단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결연히 일어선 특유의 오뚝이 정신이 크게 칭찬받는다. 세계 역사상 이처럼 ‘빨리 빨리’ 대변혁을 이룬 사례는 없다. 수많은 나라가 벤치마킹하려고 난리들이다. 희망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강렬한 희망의 뒷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희망을 좀먹거나 무너뜨릴 수도 있어서 걱정이다. 선진국 중 자살률 최고, 점증하는 빈부격차, 극단화로 치닫는 시대착오적인 이념갈등, 정치적·사회적 이해집단간의 무자비한 대결과 편협한 진영논리, 민주사회의 특징인 다양성의 ‘다름’을 ‘틀림’으로 곡해하거나 매도하며 새롭게 적대관계를 만들어 내는 불의의 구조가 그것들이다.

종합적으로 말해서 일종의 파괴적 양극화의 어둔 그림자가 사회 각처에 독버섯처럼 돋아나고 있다. ‘너 죽고 나 살자’는 학대도, ‘너 살고 나 죽자’는 자학도, 결국에는 ‘너 죽고 나 죽는’ 공멸의 비극으로 치닫는다. 여기서 대안은 하나뿐이다. ‘너 살고-나 살기’의 상생과 화해 그리고 이를 위한 평화적 공존의 방법이다. 선진사회로 급선회하고 있는 우리 한국사회는 지난날의 소품종 다량생산의 낡은 시대를 넘어 다품종 소량생산의 다원주의로 향하고 있고, 정치도 이미 다수당·소수당의 이분화가 아니라 다당제의 합리적 협치를 필수적인 조건으로 발전하고 있다. 다만 다원주의가 자리할 만한 합당한 바탕을 제공하고 그 안에서 상호간의 생산적 경쟁과 협력을 통하여 공동의 선을 이루게 하는 일이 필수적인 과제요 사명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생산적 경쟁과 합리적 협력을 가능케 할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한다. “세상에 있으나 세상을 넘어서” 존재한다고 자부하는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 넘어서의 가치가 세상에서의 중심에 자리 잡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좌우간의 무색무취한 중립도 아니고, 상하간의 어정쩡한 중간도 아니다. 인간이 되신 성탄의 정신이 중심에 서면 극우와 극좌로의 편향이나 일탈이 불가능하고 오히려 건전한 좌우가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상하의 양극화가 아닌 상하가 상생하는 선을 이룰 것이다.

민주사회는 일종의 오케스트라 사회이다. 오케스트라의 대본은 앞서 말한 자유, 인권, 정의, 공정, 복지라 하는 기본 가치관이다. 다양한 악기마다 가치관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연주하면 된다. 다만 화음이 되도록 연주해야 아름답다. 그러기에 화음을 내는 다양성은 화합하는 다름이지 파괴하는 틀림이 아니다. 구성원들이 다양한 악기로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심포니가 평화이고, 그런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이다. 남한의 사회가 아름다운 심포니 사회가 되면 평화 공동체가 된다. 남과 북 사이의 평화공존도 그리고 결과로 만들어지는 통일도 결국에는 ‘한반도 오케스트라’를 지향해야 한다고 믿는다.

박종화/ 평화통일연대 이사장

박종화 parkjw10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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