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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남남갈등,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기사승인 2019.12.05  15: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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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코리아뉴스>는 지난달 25일부터 ‘남남갈등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기획연재를 시작했다. ‘북핵보다 더 심각한 우리 내부의 시한폭탄’을 시작으로 ‘민족의 명운은 정치가 아니라 남북상생 NGO에!’, ‘남북·남남 갈등 극복, 스포츠를 통한 페어 플레이로!’, ‘남남갈등 속 북북갈등을 아십니까?’, ‘남남갈등 해법, 당대의 통일욕심을 내려놓는 데서’, ‘남남갈등 근본적 해결은 정치참여로’ 등 총 여섯 차례에 걸쳐 글이 올라왔다.

남남갈등의 현황 진단에서부터 극복 방법, 거기다 남한 사회 내 북향민끼리의 북북갈등에 대한 글 등이 포함돼 있다. 집필자는 주로 <유코리아뉴스> 편집위원들로 각 분야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연구하고 활동하는 이들이다.

일단 시작부터 ‘남남갈등이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닌데 굳이 지금 다뤄야 하는가?’란 회의적인 시각도 내부에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재를 시작한 건 ‘해도 너무하다’는 현 우리 사회 남남갈등의 심각성에 대한 공통 인식과 남남갈등이 해묵은 과제이지만 앞으로도 더욱 심각한 과제가 될 것이 명확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짚고 간다면 이번 한번만이 아니어도, 굳이 <유코리아뉴스>가 아니어도 해법찾기는 이어질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난 3일 남남갈등 연재를 마무리하며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같은 주제의 좌담회를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는 각자가 보는 남남갈등의 원인과 해법 등이 제시됐다.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남북 교류의 과정에서 불거진 남남갈등, 그리고 남남갈등의 한 축을 감당하다시피 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민낯을 성찰하듯 편집위원들은 고백했다.

유코리아뉴스가 지난 3일 개최한 ‘남남갈등 어떻게 할 것인가?’ 주제 좌담회 모습. 유코리아뉴스

<유코리아뉴스>는 이번 ‘남남갈등’을 시작으로 매월 주제별 기획연재와 좌담회를 갖기로 했다. 12월 주제는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다. 12월 한 달간의 연재를 거쳐 관련 좌담회는 1월에 있을 예정이다. 연재에는 <유코리아뉴스> 독자도 참여할 수 있다. 연재 및 좌담 내용과 관련된 문의는 ukoreanews@gmail.com 으로 하면 된다.

이번 좌담에 참여한 편집위원은 강경민 목사(일산은혜교회), 신영욱 대표(예사랑선교회), 윤은주 박사(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 김영식 목사(낮은예수마을교회), 박예영 이사장(통일코리아협동조합) 등이다. 다음은 좌담 전문이다.

 

신영욱: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에서 주관한 안동 지역 역사 기행에서 권오설 선생의 묘비를 보게 됐다. 권 선생은 사회주의자로 활동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겐 낯설고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다. 묘비의 비문에 일제 강점 시대 이념적으로 나뉘어 민족진영 안에서도 힘이 결집 안되는 상황 속에서 힘을 합쳐야 일제의 강고한 식민 사슬을 끊을 수 있다고 한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나라가 일제 시대를 지나 해방됐지만, 그 이후 남북으로 갈려졌다. 오늘의 주제인 ‘남남갈등’이 이념적인 것뿐만 아니라 빈부, 계층, 지역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으로 일어났다. 이를 쾌도난마 할 수 있는 방안은 쉽게 도출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시민들이 자각해서 실마리를 풀어내야 한다. 갈등의 최고점에 달한 상황인 것 같다. 국회가 저 모양이니 더욱 그렇다. 4월 총선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보인다. 여와 야를 불문하고 기득권 세대를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점으로 삼으면 좋겠다.

 

"우리가 아무리 균형을 위해 양쪽을 다 붙드는 시도를 해도 극우 정치 선동가 같은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하겠나. 결국 시민들의 각성에 희망을 둬야 한다. 시민평화운동이 아직은 소수에 그치고 있지만, 대세가 되도록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강경민 목사(일산은혜교회). ⓒ유코리아뉴스

강경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면 ‘은혜의 망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수용소에서 아무 근거 없이 몇 월 몇 일에 석방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시간까진 버틴다며, ‘은혜의 망상’이라고 표현했다. 북한이 망하면 흡수 통일되리라 여기는 것도 ‘은혜의 망상’이 아닐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일의 문제에선 은혜의 망상에 걸려 있다.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일산은혜교회 특강에서 한반도 통일을 방해하는 원심력과 그것을 극복하는 구심력이 있는데, 방해하는 원심력은 4대 강국이라고 했다. 재야의 입장이 아니라 정책을 다뤘던 이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4대 강국을 적대적 세력으로 규정한 게 아니라, 원심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외교가 가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통일은 난제다. 청년 때 읽은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원제가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이다. 우리나라가 지정학적으로 잘하면 균형자를 감당할 수 있고, 못하면 운명적으로 먹힐 수밖에 없는 위치라고 한 내용이 나온다. 그 힘은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나오는 게 아니라, 씨알의 각성에서부터만 나온다고 했다. 우리가 아무리 균형을 위해 양쪽을 다 붙드는 시도를 해도 극우 정치 선동가 같은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하겠나. 결국 시민들의 각성에 희망을 둬야 한다. 시민평화운동이 아직은 소수에 그치고 있지만, 대세가 되도록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김영식: ‘남남갈등’이란 용어는 2000년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이 들어서면서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미 많이 개념화 되어 있더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지나면서 남남갈등이 심화되기도 했지만, 미디어, 여성계 등에서 해소 방안에 대한 자료도 많이 나왔다. 그런데 왜 심해졌을까? 내가 볼 땐 우리 시대에 통일을 이루려고 하는 욕심 때문이다. 전쟁 경험이 있는 세대,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세대는 분단 70년 동안 (이념적으로 다른) 상대를 적으로 규정해왔다. 민족의 반역자 또는 종북 좌파로 매도했다. 이 개념이 있는 한 통일에 대해 얘기할수록 갈등만 커지는 것이다. 그러니 통일에 대한 논의는 미뤄두고, 평화를 강조하는 게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일이 아닐까?

남한은 다원적인 사회이다. 다른 의견과 차이를 존중하고 대화하는 사회적 합의와 인내의 프로세스를 더 많이 훈련해야 한다. 그게 우리 시대에 더 필요하다. 남북이 통일된다고 평화가 오진 않을 것이다. 동북아 지역이 어떻게 평화로운가에 따라 달라진다. 통일은 평화의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통일을 과정으로 생각하고, 평화를 연습하고 훈련하는 데 치중하는 것이 남남갈등 해소에 도움 될 것이다.

 

남남갈등이 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중도층들의 의견은 못 보기 때문이다. 양 극단의 이야기만 듣는다. 극단으로 치닫는 대화를 해서 상대를 설득시키기보단 설득하는 과정을 중도층에게 보임으로써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중도층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박예영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 ⓒ유코리아뉴스

박예영: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될 때 당시 문재인 후보와의 격차가 굉장히 적었다. 선거가 끝나고 몇 명이 모여 중도층이 바른 생각을 갖도록 뭔가 만들자고 했다. 하지만 무산됐다. (처음엔 칼럼을 통해) 북북갈등의 민낯을 꺼내 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주대 강의에서 남남갈등에 관한 자료를 보고, 인사이트와 희망을 얻게 됐다. 노컷뉴스에서 북북갈등에 관한 시리즈 기사를 낸 적이 있다. 북향민들 사이에도 신분차이가 있는데, (북) 엘리트 출신들은 그렇지 않은 북향민에게 공부도 못한 사람들이 와서 망신시킨다고 비난하고, 서민 출신들은 북에서도 남에서도 (신분 차에 의한) 괴리감을 느낀다고 쓴 기사였다. 어느 학술논문에선 이러한 북향민 사이의 갈등을 ‘신북북갈등’이라고 표현했더라.박예영: ‘남남갈등’이라는 주제가 나왔을 때 바로 떠오른 게 ‘북북갈등’이다. 예전 통일코리아 콘서트에서 질문을 하나 받았는데, “북한 사람들은 다 보수 아니냐?”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고 하더라. 북북갈등은 남한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다. 그렇지만 북한 사람이 다 극우라고 생각할 만큼은 아니다. 언론, 미디어가 끼친 영향이 크다.

한 방송에서 유시민 작가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상대의 말에 먼저 공감하고서 자기 말을 하는데 흐름이 좋더라. 청중들도 높이 평가했다. 결국 각자 자기의 것만 주장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자기 얘기를 하는 소통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성숙함은 이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남남갈등이 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중도층들의 의견은 못 보기 때문이다. 양 극단의 이야기만 듣는다. 중도층은 얘기를 들어주는 정당이나 정착할 수 있는 터전이 없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극단으로 치닫는 대화를 해서 상대를 설득시키기보단 설득하는 과정을 중도층에게 보임으로써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중도층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한번은 나를 공격하는 사람과 만났는데 그 사람은 일방적으로 자기의 주장만 얘기했다. 나는 듣기만 했다. 좋게 말하면 신념이고 나쁘게 말하면 똘끼가 충만해 보였다.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에너지 쓸 게 아니다. 차라리 중도층의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에게 이슈를 건네고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들어오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하는 발언은 필터링해서 들어야 한다. 탈북 과정에서의 경험, 언론의 영향 때문에 왜곡된 부분이 있다. 그걸 배제하고 들어야 한다. 우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영식: 남남갈등의 사회적 실체가 있을까? <조선일보>가 김대중 대통령의 6.15 남북정상회담을 비판하기 위해 “남북갈등보다 중요한 게 남남갈등”이라고 하면서 시작된 프레임이다. 남북관계가 더 발전되는 걸 방해하기 위해 작은 갈등을 확대했고, 정치권이 이를 받아 이용해왔다. 그걸 무시하지 못해왔던 것이다. 언론에선 지금도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집회를 똑같이 얘기한다. “남남갈등이 심하다”, “남북관계를 이렇게 하니 (시민들이) 저항한다”라고 한다. 수구 언론, 정치권이 남북관계의 변화나 평화, 통일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남남갈등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강경민: 그게 바로 양비론의 허구이다. 사실 양비론처럼 쉬운 게 없다. 얼마 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억 원을 들여 탈북자 대상 여론조사를 했다. 김정은에 대한 지지도가 70%로 나왔다. 그 조사과정을 미국 CIA가 인정했다고 들었다.

 

박예영: 국회에서 송영길 의원과 (북향민 출신) 기업가 여덟 명이 모여서 얘기한 적이 있다. 북향민 기업가들이 하나같이 “북한에서 온 사람이 다 광화문에서 시위하는 단체장 같진 않다”고 하더라. 북향민이 다 태극기 집회 참석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에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것뿐이다.

 

강경민: 북향민에게 양면성이 다 있다. 자기들끼리는 김정은을 비판하지만, 남한 사람이 김정은을 비판하면 싫어한다.

 

김영식: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지지도) 70%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문제라고 본다.

 

윤은주: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 맞장 뜨는 모습이 그들의 자부심을 키운 면이 있다. 그 지지는 북한 내부에선 더 클 것이다. 탈북민에겐 북에 있는 가족에게 받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강경민: 복합적인 심리가 있지 않겠나. 나도 일본 사람을 미국에서 만나니까 같은 동양인이라는 의식이 생기더라. 여기 와서 삼류 시민으로 전략한 것도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윤은주: 잘 나가는 북향민이 곳곳에 있지만, 나서길 꺼려한다.

 

강경민: 그런 분들은 소수다. 한국에 잘 적응하는 사람은 10% 정도일 것이다. 6-7년 전에 남한으로 왔다가 다시 떠난 사람이 (북향민의) 20%까지 됐던 적도 있다.

 

반공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 한국교회가 세기말적 흐름에서 반공의 기능을 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남남갈등의 최후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윤은주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 ⓒ유코리아뉴스

윤은주: 북향민 안에도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다. 그런데 남남갈등을 일으키는 보수 언론, 정당과 연결된 분들이 너무 목소리가 크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통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아 각기 이해한 바대로 흡수통일, 적화통일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게 갈등의 원인이다. 시민들이 각성해 정치권, 언론 등 분단 구조로부터 득을 봤던 사람들의 정치적 프레임을 극복할 때 남남갈등은 해소될 수 있다. 전광훈, 황교안 같은 사람들이 계속 그 프레임을 이용하고 있다. 이미 시민사회에선 많이 깨우쳤다. 씨알의 소리가 일어나고 있다. 반공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 한국교회가 세기말적 흐름에서 반공의 기능을 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전광훈 류에 동조하고 찬성하는 그룹이 개신교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남남갈등의 최후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신교인만 반공프레임에서 자유로워지고 용서와 화해라는 성경적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생각한다면,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남남갈등도 자연스럽게 마무리되지 않을까. 1991년 노태우 정부 때 남북기본합의서를 입안한 임동원 전 장관은 로마서 성경구절을 적용했노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했다. 사실 노태우 정부 때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화해, 교류협력, 통일과정론에 대해 발표했다. 3단계 통일방안도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란 이름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이 이어받지 못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이어받게 된 것이다. 진보도 (남남갈등의) 책임이 있다. 보수가 먼저 시작한 건데, 통일운동하는 쪽에선 인정하기 싫어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정통성을 문제 삼아 아주 좋은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했음에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노태우 대통령의 공을 인정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보수 정권에서 시작했던 것을 인정했더라면 보수, 진보를 초월해 민족에 관한 문제에선 이런 전통이 있다고 복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고 그것이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시발점인 것처럼 여겨져 역공당하지 않았나. 민족의 화합을 위한 통일의 문제는 정파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는 그러한 역사도 갖고 있다. 마지막 남은 관문이 전광훈 류의 개신교가 변화하는 일이다.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심정적 지지를 하고 있다. 특히 황교안 대표가 교회를 휩쓸고 다닌다. 그 문제는 아직 여전히 남아 있다.

 

강경민: DJ 때도 그런 말이 많이 나왔었다. 노태우 이름을 많이 팔고 그러면서 보수를 끌어안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은 예전부터 나도 지적하고 질문했던 것이다. 노태우가 햇볕정책을 먼저 시작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진실 하고는 거리가 멀고, 1971년에 김대중과 박정희가 대선에서 맞붙었다. 그리고 이듬해 7.4 공동성명이 나오게 되는데 그때 내가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때 박정희를 찍었던 사람이다. 그때 DJ가 한 말이 있는데 두 가지다. 4대국 보장 안보론, 3단계 통일론이다. 3단계 통일론은 노태우 때 이홍구에 의해 나왔지만 DJ가 말하는 3단계 통일론을 그대로 카피한 것이다. DJ 쪽에서는 벌써 1970년대에 그걸 주장했고 그것 때문에 ‘빨갱이’라는 오명을 얼마나 많이 뒤집어썼나. 그렇기 때문에 심정적으로는 그 공을 노태우한테 돌린다는 게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조언해서 ‘이건 아무래도 노태우한테 공을 돌리면서 햇볕정책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더라면 굉장히 도움이 됐을 텐데 그게 안 되었다.

 

윤은주: 햇볕정책이란 단어는 DJ가 시작했는데 제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역사적인 연결성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DJ가 3단계 통일론을 주장했고, 7.4 남북공동성명이 있었고, 그 다음에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등 이런 역사적인 고리들을 잘 연결시켜 갔으면 훨씬 더 힘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우리 정부만의 잘못은 아니고 북한은 북한대로 남북기본합의서가 너무 개방적이고, 그래서 남북교류협력으로 인해 개방되는 것을 우려해서 그걸 6.15 공동선언에 넣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지금이라도 역사적인 과정들이 있었다는 걸 재평가해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경민: 그런 말이 정부 차원에서도 많이 나왔다. 다만 여론의 메인 스트림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황교안에게 적화통일에 대한 두려움, 그건 신념이다. 그에게 그건 종교다. 공안검사를 30년 하고 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요즘 한국교회를 보면 50대까지는 중간세력이고 60대 이후는 거의 황교안식 우익세력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전체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교회의 정책결정을 그 사람들(60대 이상)이 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해 장로 나이가 낮은 편인데 50대 장로는 별로 없다. 60대는 되어야 장로가 되는 거다. 장로교의 제도라는 게 현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가 굉장한 숙제다. 장로교 제도 안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될 구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적은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에서는 장로제도 없애고 운영위원회 체제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건 아주 극소수의 작은 규모의 교회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장로교 시스템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이견이 교회 안에 합리적으로 반영될 시스템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게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보다 더 강하게 한국교회가 우익으로 보이는 것이다.

예전에 홍정길 목사님이 박근혜 탄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을 썼다가 여러 권사들이 찾아와 항의한 적 있다. 그 이후 강남 교회들의 헌금이 줄었다고 한다. 나 역시 강남에서 평생 목회했다면 어땠을까? 자신이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강남 목회자들을 우리의 스탠스로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성육신하면서 목회한 사람들 아닌가.

 

저는 기득권의 대표가 개신교라고 생각한다. 그 기득권이 70년간 강고하게 유지되어 왔기에 남북관계 변화로 인해 기득권에 위협을 당하면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영식 목사(낮은예수마을교회). ⓒ유코리아뉴스

김영식: 저는 분단체제 속에서 기득권을 누린 집단이 어딘가 그걸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 기득권의 대표가 개신교라고 생각한다. 그 기득권이 70년간 강고하게 유지되어 왔기에 남북관계 변화로 인해 기득권에 위협을 당하면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는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공주의가 시작될 때 한국 개신교와 많이 연관이 있지 않았나. 거기에 편승해 성장해온 게 개신교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분단을 이용해서, 분단을 통해서 이 교회가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가 남남갈등 극복의 핵심인 것이다.

 

 

 

윤은주: 1970년대는 군복음화, 경찰복음화의 시기였다. 여의도 대형집회 할 때 군인들이 와서 도와줬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정권과 반공에 대한 쓴 기억을 가진 교회의 이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영식: 그걸 조금 더 세밀하게 보면 분단체제를 이용해 자기 세력을 유지했던 독재정권으로부터 유익을 받은 게 개신교다. 그랬던 한국교회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용서와 화해를 말하면 되겠나.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를 지적해야 한다. 희생하기 위해서는 자기 기득권을 내려놔야 하는데 그동안 누려왔던 게 있기에 쉽지 않은 것이다. 이게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강경민: 조용기 목사에 대해 1960년대, 70년대 초까지는 기복주의라고 공격했던 기억이 없다. 70년대 후반, 80년대 들면서 그런 비판이 일어났다. 왜 60년대에는 기복주의가 안되었을까? 그때는 배고픈 시대다. 기복주의라는 말이 형성이 될 수가 없었다. 기득권이라는 말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이 밥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 사람들에게 무슨 기복주의가 있겠나. 생존주의가 있을 뿐이었다. 그때는 조용기 목사의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일정 정도 기여를 했다. 그걸 우리가 기복주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정권과 결탁되고 하면서 기복주의로 변질된 과정이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교회가 자기성찰을 못했다. 자기성찰이란 게 기독교적 세계관이 필요한데 그 성찰의 과정을 놓쳐버린 것이다. ‘나는 기득권자를 위해 복음을 전하겠다’고 한 게 아닌데 결과론적으로 기득권자를 위한 복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지도자들의 자기성찰 부족, 이런 것들이 한국교회가 기득권자들을 위한 교회, 기득권자들을 위한 복음이 된 이유다.

 

김영식: 지난번 강 목사님께서 <뉴스엔조이>에 홍정길 목사님을 옹호하는 글(홍정길 목사 설교에 대한 강경민 목사의 변론)을 쓰시지 않았나. 후대의 잣대로 이전의 것을 평가할 수 없다는 건데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 저희 평양노회 같은 경우 주기철 목사를 파면시켰다. 일제에 신사참배를 다하는데 본인은 안한다고 하니까 총회에서 제명시켜 버렸다. 이 제명시킨 것을 그냥 넘어오다가 2000년대에 와서 평양노회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복권시켰다. 저는 이런 공개적인 매듭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윤은주: 기득권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1970년대까지는 반공이 큰 목표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를 불려서 공산정권에 대응해야 한다, 그것 때문에 지지를 했던 것이다. 나중에 결과적으로 기득권이 생긴 거지만. 그래서 88선언(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할 때 ‘반공에 천착한 나머지 형제를 미워했음을 회개한다’고 죄책고백을 하게 된다. 그것은 부랴부랴 보수 교계에서 국정원의 도움으로 한기총을 만든 계기가 된다. 반공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던 이런 것이 결국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덫에 걸린 배경이라고ㅑ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안보에 대한 국민정설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제야말로 그걸 극복할 때가 됐다. 한국교회가 다 같이 인식하고 넘어가야 하는 거다. 평통연대도 그런 취지로 시작됐다.

 

우리 기독교가 종교적인 데서 벗어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우리 생각을 좀 더 넓혀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과 상관이 있다고 본다.

신영욱 예사랑선교회 대표. ⓒ유코리아뉴스

신영욱: 주기철 목사님 얘기가 나와서 나도 한 말씀드리겠다. 주 목사님에 대해 성인의 반열이라고 평가하는데 그와는 다른 평가가 있다. 주 목사님이 심문받는 과정에서 일제로부터 ‘너희는 왜 신사참배를 반대하느냐?’고 하니까 ‘우리에겐 하나님만 유일한 신이고 천황 같은 존재는 우리가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때 검사가 질문을 하나 던졌다. ‘우리 황군이 지금 동남아에도 들어가고 있는데 누구는 침략이라고 하지만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 주 목사님은 ‘그들은 이교도들인데 그들을 침략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했다. 그것이 주 목사님만 그런 게 아니라 손양원 목사님도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셨다. 우리 기독교가 너무 편협한 종교적인 울타리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얼마 전 동남아에서 지진났을 때 ‘그 사람들은 이교도여서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는 거였다.

주, 손 목사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가 종교적인 데서 벗어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우리 생각을 좀 더 넓혀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과 상관이 있다고 본다. 지난달 KBS에서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기획했는데 요즘 들어서 백인들이나 신나치주의자들,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파괴하고 테러하는 걸 다루면서 ‘도대체 왜 이런 극단주의가 극성을 부리는가?’라고 질문하고 있는데 결론은 이것이다.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념은 그냥 생겨진 게 아니라 누군가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사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걸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남남갈등도 정치권이나 언론계가 됐든 어디선가 이걸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단순히 정치 쪽에서의 기득권 세력뿐만 아니라 정말 심각한 건 언론계라고 본다. 언론계가 정화되지 않으면 계속해서 이 문제는 불거질 수밖에 없다. 기독교 쪽에서도 개인적인 회심, 회개로 끝날 게 아니라 이제는 뭔가 제도적인 쪽으로 다시 가닥을 잡고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과제라고 생각한다.

유코리아뉴스가 지난 3일 개최한 ‘남남갈등 어떻게 할 것인가?’ 주제 좌담회 모습. 유코리아뉴스

강경민: 30년도 넘었을 텐데 YH사건을 아시는가. YS(김영삼)가 거기 가서 금식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때 몰트만 박사가 한국에 왔다. 내가 총신대 학부생일 땐데 총신대에서는 몰트만을 이단 취급하고 있었다. 나도 그때 몰트만 강의에 갔었는데 누가 그 질문을 했다. ‘YH사건 현장에 성령님이 계셨느냐?’ 그러니까 몰트만이 ‘그건 진작 칼빈이 신학적으로 잘 정리했다’고 답변했다. 난 그 답변 때문에 아직도 그 장면을 잘 기억하고 있다. 내가 아는 몰트만은 자유주의자였는데 칼빈을 인용하기에 깜짝 놀란 것이다. 칼빈의 일반은총론을 통해 그건 이미 신학적으로 잘 정돈했고, 거기에 성령님이 계셨다고 한 것이다. 정작 장로교는 칼빈, 칼빈 하면서 일반은총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배타적이다.

이미 본회퍼는 ‘우리의 신앙적 언어를 비종교화해야 한다’고 했다. 1945년 이전에 독일에서 나치를 경험하면서 했던 얘기다. 그런데 우린 꼭 종교적인 얘기를 해야 신앙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것 때문에 총신이나 합신에서는 본회퍼를 들먹이기만 해도 이단이다. 지금도 그렇다. 본회퍼 전기를 보니까 미국 근본주의에 대해 존 스토트도 지적한 것이지만, 미국 근본주의가 너무 편협해진 이유 중 하나는 그때 당시 미국의 자유주의가 너무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 존 스토트도 ‘내가 거기 있었어도 그렇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니까 당시 미국 자유주의가 너무 성경에서 멀리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 미국의 자유주의를 보면서 본회퍼는 ‘이 사람들은 신학이 뭔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다. 미국 자유주의를 굉장히 비판적으로 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본회퍼를 자유주의자로 규정한다는 게 얼마나 속좁은 얘기인가. 우리 시대가 신앙에 견고하게 서 있으면서도 비종교적인 언어, 일반 공통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언어로 신앙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그 신앙적 전통을 견고하게 가지면서 우리 신앙적 가치를 비종교적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는 공간을 가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끝>

김성원 정지연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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